정신과에서 보낸 두 시간

어느 날 문득, 무언가가 조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신과에 갔다.

나는 왜 앵그리 우먼이 되었을까?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개 배우가 인터뷰를 하다 울었다더라. 의아했던 그 행동을 이젠 격하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생애 첫 정신 상담은 나도 모르게 흐르던 한 줄기 눈물로 시작되었다. 의사는 조용히 앞에 있는 티슈를 권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가장 깊숙이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꺼내 올려야 한다는 것은 단시간에 복합적인 감정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가족사, 회사생활, 연애, 성생활, 성취감, 자존감, 자살 생각 혹은 경험, 죽음. 50가지 문항이 있는 ‘문장완성검사지’를 빠른 속도로 적어 내려갔다. 의사는 말했다. “32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고양이라…. 이 문항은 마음이 좀 아프네요.” 내가 멋쩍게 웃었다. 간단한 대화 후 다시 검사가 이어졌다. 몸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견디는지에 대한 자율신경 검사를 위해 팔목과 발목에 이탈리아 국기 같은 삼색 팔찌와 발찌가 채워졌다. 그 후엔 시리(Siri) 같은 사이버 음성이 숫자를 불러주면 순서대로 기억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7자리 숫자부터는 동공이 흔들렸고, 역방향으로 전환됐을 땐 와르르 무너졌다.(여기까지 와서 틀리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며 스트레스를 받는 나란 인간이란!) 소나기처럼 후두두 떨어지는 숫자 사이에서 3이 들릴 때마다 초록 버튼을 누르는 집중력 검사에서는 손이 여러 번 미끄러졌다. 기억력은 평균, 집중력은 평균 이하, 예상대로였다. “어제 몇 시간 주무셨어요? 집중력이 평균보다 약간 떨어져 있네요. 약간 경계하시는 게 좋겠어요.” 11장으로 묶인 우울과 불안 검사에서도 ‘경도’ 수준의 심각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의사가 운을 본격적으로 떼기 시작한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평소 ‘광인’ ‘크레이지 알(R은 나의 애칭이다)’로 장난처럼 희화화되거나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도 무슨 일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나’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스위치 버튼이 눌리며 코미디가 다큐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정말이지 심장이 ‘쿵’ 했다. “지금까지 해주신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충동적인 성향이 일부 있네요. 이걸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앵거(Anger), 즉 분노하고 관련이 있어요. 마음의 분노를 평상시에는 억제하고 억압하는 거죠. 근데 사람이 예수님도 부처님도 아니잖습니까. 뭔가 분출해야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런 패턴들이 인생에서 조금씩 보이네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학창시절 선도부에 자원하며 모범생 같은 뉘앙스를 풍기다가도 가끔 무단결석을 해서 빨간 줄(?)을 획득했다거나, 멀쩡히 회사를 다니다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했던 경험이 왕왕 있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건 최근 ‘시발비용’과 ‘탕진잼’이란 신조어로 조명받는 스트레스성 ‘과격한 소비 현상’을 이미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실천해온 진정한 힙스터(?)가 바로 나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한 채 진정한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정신으로 외줄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내’가 보였다. 선배들이 영화 <화차>나 <종이달>이라고 놀려도 ‘깔깔깔’ 웃으며 오버액션을 취했던 건 사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처연한 몸부림이었음을 고백한다. “사람들은 외부 환경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어기제를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유머도 어떻게 보면 고차원적인 방어기제에 해당되죠. 예를 들어 망상을 하는 사람들은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갖고 있는 겁니다. 쉽게 말해 남 탓을 하는 거죠. 김아름 님의 주된 방어는 억제와 억압입니다. 누르고 참는 게 상당히 잘 발달되어 있는 사람이에요.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그것을 너무 발산시키지 않고 참다 보면 충동이 컨트롤되지 않는 지경으로 갈 수 있죠. 스트레스가 계속 쌓일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건 화가 나서 두더지를 방망이로 세차게 때린다거나(요즘 나의 취미는 24시간 오락실에 있는 사격이긴 하다) 기도원 독방에 들어가 흐느끼며(아주 옛날에 해보긴 했다) 신에게 기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차분하고 침착해 보이며, 지적이고 정신적인 고차원의 무언가를 갈망하며, 정상적인 일상을 연기하고 있지만 실상 삶의 가장 큰 구멍을 직시하지 않는다는 것. 두 시간 남짓의 정신 상담은 좀처럼 바라보거나 직면할 자신이 없었던 나의 ‘지금’과 ‘과거’였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저는 아침에 오면 그날 제일 하기 싫은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요.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해야 한다거나 반대로 제가 전화로 아쉬운 이야기를 하며 연기해야 한다든가. 불편한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도리어 하루가 잘 돌아가죠. 직면하기 싫은 문제를 미루지 않고 제대로 쳐다보는 것,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이지만 그래야 다음 스텝이 생기겠죠?” 그날 받은 흰 봉투가 아직도 가방 안에 고이 담겨 있다. 에디터/ 김아름


불안이라는 무중력의 세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다급히 “내일 아침에 당장 진료 예약이 가능하냐”는 문의를 했지만 사실 새삼스러울 일은 없었다. 30분 간격으로 심호흡을 한다거나, 하루 종일 아로마 오일을 킁킁 댄다거나, 층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심장이 조여온다거나, 백화점 식품 매장의 인파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등의 일들은 환절기 감기처럼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반복되는 증상이었으니까.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지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병원에 갈 정도는 더더욱 아니었다. 금요일 저녁의 식품 매장에서 쾌활하기란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나? 그러나 몇몇 주변인들은 나의 ‘섬세한’ 멘탈로 인해 자신들이 되려 고통받고 있다고 조심스레 고백했고, 마침내 후배들이 나의 생일에 돈을 모아서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해주겠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예약은 해놓았지만 막상 의사를 만나면 털어놓을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첫 마디로는 우디 앨런의 이 말이 적절할 듯했다. “난 내가 아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아플 때는 늘 그것이 치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의사를 만나자 준비해놓은 첫 마디마저 꺼내놓지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직격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불안 지수가 높아요?”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작은 방에 갇혀서 심리 검사지를 작성하고 손과 발에 집게가 물린 채 자율신경 검사를 마친 참이었다. 스트레스와 피로도, 저항력 상태를 알아보기 위함이라는 이 검사는 사실 손발을 꼼지락거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일에 취약한 나 같은 사람에게 벌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 어려웠던 것은 곤혹스러운 질문들, ‘어떻게 해서든 잊고 싶은 것은 (과거에 창피를 당했던 일)’, ‘사람들이 성(性)에 대해 이야기하면 (옛날을 회상한다)’, ‘언젠가 나는 (혼자일까 봐 두렵다)’ 등등의 빈칸을 채우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결과를 종합하여 의사는 나에게 ‘불안증’ 처방을 내렸다. “22점부터 불안을 치료하라고 하고, 25점이면 공황장애를 의심하는데, 30점이 훌쩍 넘잖아요?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지선 님은 불안 지수에 비해 우울은 깊지 않아요. 그런데 문장 완성 검사에서는 또 왜 이렇게 부정적인가요?”

유별난 일은 아니다. 불안증은 오늘날 가장 흔한 정신 질환 중 하나며, 미국에서는 불안증 환자가 우울증 등의 기분장애 환자보다 많다고 한다.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은 심한 불안장애를 겪고 있고, 네 명 중 한 명은 일상을 조금 불편하게 만드는 정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네 명 중 한 명에 속하게 된 이유는 나도 몰랐다. 의사는 최근에 이별을 했는지, 혼자 사는 건 괜찮은지, 일에 집중은 잘 되는지, 왜 이렇게 바쁜 일을 하는지, 밤에 잠은 잘 자는지, 압박감이 있는지, 지금 무언가가 쫓아오는 기분이 드는지(마감밖에 없었다) 등등의 세세한 질문을 했지만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요. 게다가 누구나 그런 것 아닌가요?”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식은땀이 흐른다거나, 가장 강인해지고 싶은 순간에 한없이 유약해진다거나, 그 정신적 붕괴를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초조해진다거나. 의사는 차분히 답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불안감들의 배선이 잘못되어서 복합적으로 한데 엉켰을 때 누전이 되는 거예요. 정신이 신체를 습격하는 것이라고 보면 돼요. 환자분의 경우 그 정도는 아니지만, 밸런스가 잘 안 맞는 상태예요. 그럴 땐 약도 도움이 돼요. 보험으로 하실 건가요, 일반으로 하실 건가요?”

여전히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 국가에서 80%의 비용을 지불하는 보험 처리 대신에 본인이 100%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반’으로 처리해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기록을 남기기 싫어서’라고. 나 역시 결혼은 안 했지만, 당연히 ‘보험’ 처리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읽은 불안증에 대한 책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불안이 우리 시대 가장 흔한 심리적 현상임이 널리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불안의 정의는 거의 합의되지 않았고 불안의 정도를 가늠하는 방법에도 발전이 없습니다.” 불안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금세 치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평생 동안 공존해야 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힐 필요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방법이 아침저녁으로 삼키는 알약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요즘 유난히 심호흡의 간격이 짧아진 이유에 대해 관찰해보기로 했다. 에디터/ 김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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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Choi Jee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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