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과의 저녁식사

음식에는 흥미가 없다는 정지영 감독을 저녁식사에 초대 했다. 투우사의 꼬리찜을 대신한 갈비찜과 영화 '남부군'의 진달래꽃에서 착안한 화전을 차려두고, 정지영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개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음식보다 더 맛있는 이야기들이 식탁 위에 넘쳐흐른다.

‘쏘맥’의 추억

간략한 설명과 함께 인터뷰를 청했을 때, 정지영 감독은 지체 없이 답을 주었다. 음식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전혀 없어. 백지야. 그러니까 백지인 사람으로 치고 그다음 얘기를 하자고. 요즘에 이런 사람도 있다, 하고. 깔끔한 승낙. 나는 그의 이런 대화방식이 참 좋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꺼리는 음식이 있는지를 확인했을 때에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주는 대로 다 먹어, 그러니 마음대로 하라고. 그럼 그날 저녁에 보자고 오케이? 상황 정리 끝. 마치 음식이라는 건 생을 유지하기 위한 영양 공급의 의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덧붙일 말이 뭐가 더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와 제법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함께 먹었다는 기억이 없다. 그와는 대부분 술자리를 같이했다. 특별할 것 없는 약간의 술안주를 곁들여서. 하지만 일단 그가 제조한 ‘쏘맥’을 맛보면, 안주 따위는 소품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만들어준 쏘맥은 지금까지 내가 맛본 모든 쏘맥 중에 단연 최고다. 그의 쏘맥은 단순 경쾌하다. 위압적이거나 장식적이지도 않다. 불이나 젓가락, 냅킨 같은 걸로 눈길을 잡아 끌지도 않는다. 회오리는커녕 솟는 거품조차 미미하다. 그저 맥주잔에 적당량의 소주와 맥주를 차례로 부어 건넬 뿐인데도 입에 쩍쩍 붙는다. 강요하는 법도 없다. 그래서 이쪽에서 먼저 청하게 된다. 한 잔 더 주세요, 한 잔 더요. 입 벌린 참새 새끼처럼 짹짹거리면, 그는 그저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씩 웃곤 말을 이어간다. 이 얘기 좀 들어봐, 아주 재밌어, 이런 걸 영화로 해보려 해, 이런 걸 써보지 그래? 맛있는 이야기들이 잔을 채우고 넘쳐흐른다.

사실 내가 썼던 장편소설 <생강>도 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여느 날처럼 그의 쏘맥을 마시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다락방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끌린 듯 그거 내가 쓸래요, 침을 발라버렸다. 그는 흔쾌히 허락했고 응원을 보냈다. 소설이 완성된 것은 그 후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였지만, 어쨌거나 쓰겠다는 다짐과 약속은 지켰다. 나중에 그는 <남영동1985>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내 소설과 그의 영화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결도 다르다. 그의 표현대로 그와 나는 그야말로 캐릭터가 다른지라. 하지만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감히 범접할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를 손에 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그가
<남영동1985> 촬영을 막 마치고 난 후 만난 자리에서 나를 보자마자 한 말. 천 작가는 그걸 어떻게 견뎠어? 위안을 넘어 보상까지 받는 느낌이었다. 그는 촬영 내내 술을 마시지 않고 버틸 수 없었으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고 했다. 퀭한 눈과 시커먼 낯빛만으로도 그 시간이 보였다.

그를 위한 식탁에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꼬리찜이었다. 라보 데 토로(Rabo de Toro). 투우장이 있는 도시라면 유명한 맛집 하나는 꼭 있는 황소꼬리찜. 스페인 전통인지 동물 학대인지 투우 논의는 뒤로하고. 그를 생각하면 우선 투우가 생각난다. 그의 역할이 투우소인지 투우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투우. 용감하고 아름다운 경기를 보여준 투우사에게 내리는 상이 있다. 죽은 소의 귀 하나, 그 다음은 귀 둘, 가장 위대한 자에게는 꼬리. 꼬리를 거머쥔 투우사는 그리 많지 않다. 투우사에게 투우소의 꼬리는 궁극의 전리품이다. 소위 블랙리스트 빨갱이로 찍힌 정지영에게는 그만한 음식이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몇 가지 불가피한 이유로 꼬리찜 대신 갈비찜을 준비했다. 전날 부산영화제에서 과음을 하고 돌아온 그에게 어울리는 메뉴는 아니었지만, 주는 대로 다 먹는다던 말대로 그는 묵묵히 갈빗살을 뜯었다 .

음식에 관해서는 아는 바도 없고 아는 척도 안 한다는 그였지만, 새우 카르파치오(Carpacio de Gambon)를 앞으로 내밀었을 때는 반응을 보였다. 이건 어떻게 한 건데 되게 맛있네? 어떻게 만든 거야? 공을 많이 들인 거 같아. 이것이 정지영이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공과 노를 먼저 살피는 사람. 가장 나중까지 기다렸다가 펄떡펄떡 뛰는 산 새우를 사 온 보람이 있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 같이 있으면 격려와 보상이 되는 사람. 후식으로는 화전을 지졌다. 영화 <남부군>에서 진달래꽃을 뜯어 먹던 장면이 생각나서. 봄은 멀어 가까운 가을꽃 감국을 얹었다. 꽃을 얹다보니 그가 꽃인 듯했다. 환하게 핀 가을꽃. 아직 철이 덜 들어, 들 철이 여전히 남아 있는. 지금의 제철인 가을꽃. 어쩌면 꽃을 좋아하는 투우소인지도. 꽃을 입에 문 투우사인가?

날달걀의 맛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화예술 쪽 사람들이 보통은 미식가거든? 그런데 난 그냥 아무거나 잘 먹어.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가리는 것도 없고, 자주 가는 음식점도 없고. 그러니까 여자들이 싫어하지. 여자들은 맛있는 걸 사주는 남자를 좋아하잖아. 그래도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잖아요. 특이하니까. 이 사람 대체 뭐야, 그러면서 좋아하는 거지. 그러다 금세 재미없어지지.

우리 어릴 때?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그땐 날달걀에 밥 비벼 먹었다구. 달걀이 귀하고 비쌌어. 어느 날 밥상에 날달걀이 올라왔다 그러면 너무 신나는 거야. 뜨거운 밥에 깨뜨려서 간장 조금 넣어서 비벼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 어머니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게, 장사를 하셨거든. 포목점을 하셨다구.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니 음식이 뭐. 전쟁 직후에 한복 바느질로 시작했는데, 청주에 있는 기생들은 다 우리 어머니한테 와서 한복을 맞춰갔다는 거야. 실력이 좋았지. 한복 맞추는 시대가 지나고 포목점을 하게 된 건데. 아버지가 집안을 거의 돌보지 않았거든. 필요한 것만 갖다 주고, 엄마가 버는 거야. 젊어서부터 그렇게 일을 하셨기 때문인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돈을 안 벌면 못 견뎌. 팔십 노인네가 됐는데도 시골에 가서 고추를 사 와서 그걸 친척들에게 팔아. 돌아가실 때까지 그러더라고.

난 엄마보다 아버지 기질을 닮은 것 같아. 이기주의자.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 이기적 충족을 위해 주위 사람을 희생시킨 것 같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어. 가장이 된다는 게 뭔지도 잘 모른 채. 결혼하고 나서야 돈을 벌기는 해야 되는구나 생각했지. 취직 시험을 봤는데 떨어지고. 그래서 부모님께 말했지. 아무래도 저 영화계로 들어가야겠습니다. 돈은 못 법니다. 3년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철없는 제안을 하고 허락을 받았어. 아내는 집에 맡겨놓고, 나는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사람이 된 거지. 우리 집이 하숙을 쳤거든? 일이 보통 많아? 나름 시집살이도 있었겠지. 그러니 가끔 집에 오면 나보고 우는 거야. 그때마다 어쩌냐 참아야지, 나를 만난 게 운명인데, 기다려라, 참아라, 이러면서 버텼지. 1년 만에 분가를 했어. 둘이 겨우 누워 잘 만큼 작은 방이었는데, 가게가 딸려 있어서 아내가 양장점을 시작했어. 그런데 될 리가 있나. 그 변두리에. 그때부터 빚으로 산 거지. 나야 뭐 빚 끌어올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고. 아내가 알아서 다.

<부러진 화살>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꽤 여유가 생겼잖느냐고? 그렇지. 처음으로 집도 샀고. 그런데 아내가 쓰러졌잖아. 돈 벌어서 한참 신나는 찰나에. 수술하고 지금은 몸의 반을 못 써. 뇌경색 뇌출혈 전문병원에 있는데, 재활 치료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려려고. 그런데 재밌는 건 인간은 자기가 본 시각에서 그 사람을 평가하게 되잖아? 내가 아침마다 아침밥 싸들고 병원에 가서 먹거든. 사과 달걀 바나나 이렇게. 휠체어 태워서 화장실도 가고 그러는데, 거기 간호사들이랑 간병인들이 그런다는 거야. 세상에 저런 남편이 어디 있냐고. 그 사람들이 볼 때는 내가 대단한 남편인 거야. 애처가란 말이지. 그런데 사실 안 그렇잖아. 아내가 나 보면 또 자꾸 울어. 왜 우냐? 물으니까, 내가 지금처럼만 예뻐해줬으면 자기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사실 아내가 그렇게 된 데에는 내 잘못도 있어. 내가 베트남 가 있는 동안 그랬거든. 밤에 쓰러졌다는데, 빨리 발견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시간이 너무 지난 거지. 병원에 있다고 해서 가보니까 몸도 못 움직이고 말도 버벅버벅. 그때 처음으로 와이프 때문에 눈물을 흘렸잖아. 아, 정말. 내가 진짜 나쁜 놈이구나. 나는 보통사람보다 20년쯤 철이 늦게 드는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 내 정신 연령은 50세인 거지.

갈빗살로 만든 라보 데 토로와 새우 카르파치오, 화전으로 차린 식탁.

정지영이라는 브랜드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공무원을 하면서 책방을 했어. 사촌형님이 서라벌 예대 문창과를 졸업했거든. 졸업해서 취직은 못하고 소설만 쓰고 있는 거지. 그래서 아버지가 와서 책이나 팔면서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서점을 낸 거야. 그 혜택을 내가 받았지. 일찌감치 본격문학을 접한 거야. 그때 신구문화사에서 13권짜리 전후문학전집이 나왔어. 한국편, 일본편, 북유럽편, 미주편, 나라별로 해서. 마지막 권은 희곡, 시나리오. 거기에 재미를 붙인 거지. 그게 나한테 상당한 자극을 주는 바람에, 그때부터 문학 소년이 됐다고. 고등학교 들어서는 사촌형님이 취직해서 서울로 가는 바람에 책방이 없어졌고 도서관엘 매일 다녔어요. 도서관에는 매달 잡지를 갖다놓잖아. <사상계> <세대> <문학춘추>
<현대문학> 이런 것들. 그거 보는 재미로 공부는 안 하고.

소설가? 당연히 생각했지. 중 3땐가에는 소설도 쓰고 그랬어. 소설가가 되는 걸 포기한 적은 없었지.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바꾸고 나서도 소설은 쓰겠다고 했어.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소설로 먼저 만들어봐야겠다, 하고 써봤는데 안 되더라고. 안타깝게도 포기했어.

어쨌거나 영화 만드는 데 상당히 도움을 주긴 했어. 데뷔작은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인데, 프랑스 원작소설이야. 새롭고 모던하게 찍었어. 그땐 나도 모더니스트였다고. 전후문학전집을 통달한 사람이니 근본이 리얼리스트였지만, 그 당시에는 리얼리즘 영화를 찍을 수 없던 사회란 말야. 검열이 혹독하게 진행되는 시기니까. 1987년 이후에 용기를 내서 <남부군>을 만든 거야. 그때부터 정지영을 인정해주더라고. 그 당시 서울서 단관 개봉에 38만 명 들었다면 그야말로 대박이거든? 다른 영화 제작비의 5배를 썼어.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였고. 그걸 나중에 <하얀 전쟁>이 다시 깼지. 그다음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까지. 그때가 정지영의 전성기였지. 그다음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로 완전히 리얼리스트로 굳어진 거야. 정지영이라는 브랜드가 생겨버렸어. 좀 억울해. 나도 다양하게 하고 싶은데.

한동안 못 만들었지. 블랙리스트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중에야 알았어. 그때 <탄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대물이고 멜로고 그러니까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투자가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꼰대 취급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직지코드>라는 다큐를 하고 알았어. 어찌어찌해서 겨우 청주시하고 충청북도에서 지원을 받아서 한 영화였는데, 그때 담당했던 공무원이 나중에 그러더라고, 나 때문에 잘릴 뻔했다고. 내가 순진했지. 그땐 정지영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무조건 안 되는 거였어. 멜로든 역사든 뭐든. 그것도 모르고, 왜 이렇게 안 될까 고민하면서 애를 쓴 거야.

내가 어쩌다 영화계 운동권이 됐냐고? 미국 영화 직배 반대투쟁 때부터였나? 아, 제일 처음 시작한 게 87년, 전두환이 직선제 한다 그랬다가 다시 간선제로 돌아간다고 선언을 했어. 그때 문화예술인들이 다 서명을 하는데 영화인들만 가만있는 거야. 그땐 내가 뭐 대표감독도 아닌데, 영화인들이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다른 감독들이랑 술 먹고 있다가, 야 이거 영화인들 너무한 거 아냐? 우리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고선 다음 날 사무실 하나 차지하고 전화를 쫙 돌렸지. 170여 명 모아서 서명하고 신문사에 넣었다고. 그게 말하자면 주동자가 되어버린 거야. 다들 마음은 있었지만 나서지 못하는 걸 내가 나섰을 뿐인데. 그때부터 충무로에서 유명해진 거야.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좀 나서주세요, 한단 말이지. 그러면서 어느새 영화운동 하면, 정지영이 리더가 된 거야. 검열 철폐, 스크린쿼터, 영화 직배, 대장으로 만들어버렸어. 지금도 뭐 하라는 게 많아.

리더 기질이 어디서 왔느냐? 동국대 연극영화과 1학년 때였어. 어느 날 선배들이 군기 잡는다고 분장실로 1학년들을 집합시킨 거야. 죽 앉혀놓고는 맞아야 한대. 맞을 짓이 뭐냐 그랬더니 선배들을 우습게 안다는 거야. 실은 콤플렉스 때문이었어. 졸업작품 하는데 1학년 애들이 정말 열심히 했거든? 그러니까 저절로 2학년이 소외되고. 그래서 패겠다는 건데, 말이 돼? 대학생이 되어서 자기들 콤플렉스를 견딜 수 없어서 후배들을 팬다?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야. 내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인데. 그래서 그런 이유라면 맞을 수 없다, 하고 버텼지. 나중에 후배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총회까지 열었잖아. 일대 사건이었지. 하극상으로. 졸업한 선배들까지 오고. 그때 알았어. 내가 부드러운 리더는 못 되지만 옳고 그름을 따져서 대드는 일은 잘하는 놈이구나.

 

철이 들어서 이만큼

그는 올해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낯설었다. 대드는 일을 하던 정지영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라니. 영화제 조직위원장이나 집행위원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쩌다가? 이 질문도 참 편협하다. 또한 곧장 답이 날아왔다. 그러니까 내가 좀 철이 들었단 얘기지. 매달 연금처럼 수당이 나오잖아. 풋, 아니 그래서가 아니고 예술원 회원? 싫지 않더라구. 그의 말대로 철이 좀 들긴 한 것 같다. 반갑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와 쏘맥을 먹은 지 한참 되었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서로 좀 소원하기도 했다. 가끔 그의 쏘맥을 넙죽넙죽 받아먹던 시절이 그립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뜨거운 사람이어서, 그의 쏘맥을 곁들인 이야기들로 온도를 식히곤 했었다. 나의 뜨거움이 그리운 건지, 그의 쏘맥이 그리운 건지는 확실치는 않다. 문제는 캐릭터라고, 캐릭터를 이해하면 된다고. 그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캐릭터. 그는 자신을 철이 덜 든, 이제 철이 좀 들기 시작한, 이기적 리얼리스트 캐릭터로 이해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그의 캐릭터는 리얼리스트 로맨티스트다. 그의 말대로라면 캐릭터는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다던데. 철이야 들든 말든 그 캐릭터가 어디 가나.

그의 쏘맥을 먹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좀 아쉬웠다. 그거야 언제든지. 술 마실 상태가 되면 연락하자고. 다음 영화? 비밀이야. 그것도 일종의 정치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아직은 공개를 못 해. 그다음 영화는 얘기해도 돼. 삼례슈퍼 삼인조 살인사건. 들어봤지? 삼인조 애들이 슈퍼 털다가 할머니를 죽였는데 감옥 살고 나와서, 범인이다 아니다 투쟁하다가 결국 뒤집는 얘기. 그야말로 정지영표 영화다. 그 다음다음 영화는 소설가 조선희가 쓴 <세 여자>. 내가 여자를 잘 모르잖아, 여자들에게는 논리적으로 해석이 안 되는 미묘한 지점이 있거든. 그래서 이 영화는 여자들의 코치를 받아가면서 해야 해. 여전했다. 그에게는 지금 기획 중이거나 진행 중인 영화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마지막 조언을 날렸다.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꼭 하라고. 그게 에너지를 만든다고. 연애는 끊지 마. 물론이죠 감독님. 그런데 다음 영화에 로맨스는 없어요? 없어. 그냥 썸만 타고 말아.   글/ 천운영(소설가) 에디터/ 김지선

※ 영화감독 정지영은 1982년에 신일룡과오수미가 주연을 맡은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데뷔했다.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주제인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그려낸 영화 <남부군>과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다룬 <하얀 전쟁>, 2011년 작품 <부러진 화살> 등을 통해 정지영만이 할 수 있는 장르가 만들어졌다.

※ 소설가 천운영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외에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을 출간하였다. 서울 연남동에 스페인 음식점 ‘돈키호테의 식탁’을 열었다. 요리는 직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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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Jaean Lee
출처
57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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