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힘 : 공범자들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언론이 필요하다. 이 당연한 명제가 지난 10년 동안 휴지 조각이 됐다. 최승호 PD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은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메라와 녹음기를 양손에 단단히 쥔 최승호 PD가 묻는다. “이제 진실을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요?”

공범자들, 최승호 - 하퍼스 바자

시사회 말고 일반 상영 때 극장에서 <공범자들>을 볼 기회가 있었나?

없었다. GV를 워낙 많이 하다 보니까, 그것만으로도 질릴 정도로 많이 보았다.(웃음) 그래도 더 많이 알려야 하니까, 시사회와 이런 인터뷰 자리가 귀하다.

관객으로서 <공범자들>을 극장에서 보는 것은 조금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 같이 등장인물에게 야유를 보내고, 세월호 이야기가 나올 땐 다 같이 코를 훌쩍였다. 극장 안에 연대감이 조성됐달까.

주연 배우들이 그래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들이고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서 어떤 최소한의 책임감이나 상식을 찾아볼 수 없지 않나. 비상식도 아니고 몰상식한 태도를 보이니까 관객들이 놀라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이 가장 분노를 느낀 장면으로 언론을 망친 공범자들 중 한 명인 백종문 MBC 부사장이 적반하장으로 “방송의 미래를 막지 마세요.”라고 말한 장면을 꼽더라. 참 기가 막히는 이야기지.

맞다.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 많았다. <공범자들>의 백미는 최승호 PD가 언론을 망친 장본인들과 대면하여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들은 결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지만 흔들리는 동공과 회피하는 태도, 초라한 뒷모습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답변을 듣기 위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질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직접 만나서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효과를 낳는다. 공범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징벌은 그 얼굴을 영상으로 기록해놓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인쇄 매체의 기자들은 잘 이해를 못하더라. 어차피 답을 안 하는데 왜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질문을 던지냐는 거다. 기사에서는 인터뷰이가 답을 안 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영상에서는, 더군다나 큰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영화에서는 답을 회피하는 수만 가지 방식을 포착함으로써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다.

공범자들, 최승호 - 하퍼스 바자

#SCENE 1
최승호 PD가 김장겸 MBC 사장에게 묻는다. “언론을 망친 파괴자라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범자들, 최승호 - 하퍼스 바자

#SCENE 2
최승호 PD가 안광한 전 MBC 사장에게 묻는다. “언론을 망친 공범자라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범자들, 최승호 - 하퍼스 바자

#SCENE 3
최승호 PD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묻는다. “언론을 망친 끝판왕이라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상치 못한 명장면은 질문을 피해 비상계단을 따라 도망가는 안광한 전 MBC 사장의 ‘비상구 신’이다. <공범자들> 장르가 액션이자 블랙 코미디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잠시 포착된 당신의 허탈한 표정도 인상적이었다.

한 인간의 초라함을 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고 “악의 누추함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몇 십 년 동안 취재를 해봐도, 인터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 누구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한때 MBC의 사장이었던 사람이 질문을 피하는 것을 넘어 뛰어서 도망까지 가다니, 참혹함을 느꼈다. 끝까지 쫓아가려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쫓아가서 뭘 어떻게 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대면했을 때 “전직 언론인이지 않습니까?” “질문을 던지던 사람인데, 질문을 받을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공인입니다.”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언론인의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

외국에서는 가끔 언론인이 언론인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상대방이 굉장히 곤란한 질문을 던질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하는 경우들을 본다. 이를테면 워터 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프런트 라인>에서, 이라크 전쟁 시절 밥 우드워드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오보를 한 사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밥 우드워드는 순순히 인터뷰에 응하고, 자신이 오보를 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인정한다. 김재철이나 김장겸은 기자 생활을 30년 이상 하면서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인터뷰를 요청 받을 때에도 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질문할 권리는 누리고, 답변을 해야 하는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굉장히 답답하기 때문에 자꾸만 “전직 언론인이지 않냐”는 말을 하게 되는데 정작 그 사람들이 그 말의 뜻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다.

직접 만나서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효과를 낳는다. 공범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징벌은 그 얼굴을 영상으로 기록해놓는 것이다.

말의 뉘앙스와 결에 신경 쓰며 우회하는 대화에 익숙한 월간지 기자로서, 당신의 인터뷰 기술은 정말이지 존경스러웠다. 악수를 하자마자 “당신은 언론의 파괴자”라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나?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그런 당신을 두고 “얼굴에 강철판을 깐 듯 무심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이미는 강철 심장의 신인류”라고 말했다.

상황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인터뷰이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상황이라면,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지 않을 거다. 인터뷰도 예술이라고 하지 않나. 나도 그런 인터뷰를 하고 싶다.(웃음) MBC PD 시절에 <PD수첩>을 만들 때 잘못을 한 사람을 어떻게든 카메라 앞에 앉히면 일단 성공한 거라고 봤다. 그때는 편안하게 답할 수 있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증거를 보여주면서 심장을 향해 나아갔는데, 지금도 그런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러나 <공범자들>의 인터뷰이들은 그럴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한 마디밖에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 한 마디를 뭘로 할지 사전에 오랫동안 생각했을 것 같다.

정말 그랬다. 특히 이명박의 경우에는 경호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경호를 뚫기 위해서 반가운 목소리로 “오랜만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접근했다. 그 사람도 어디선가 나를 만났던 기억이 있었는지 “오~” 하면서 다가와서 악수를 한 듯했다. 나름대로는 짧은 순간이지만 상대방에게 예의를 차린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을 오래 끌면 무시하고 차 안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악수를 한 뒤에 곧장 “언론을 파괴한 장본인이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매복해서 기다렸다가 질문을 하는 것을 ‘앰부시(Ambush) 인터뷰’라고 한다. 미국 CBS 방송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 <60분(60minutes)>을 40년가량 진행해온 탐사보도 전문 리포터 마이크 월리스가 붙인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공인들의 답변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 문화권에서는 굳이 그런 인터뷰를 할 필요가 없다. 앰부시 인터뷰의 자극적인 화면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자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질문을 피하기 때문에 인터뷰 시도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이를테면 출입 기자들은 직접적인 인터뷰를 하지 않고 같이 밥 먹으면서 이야기한 뒤 관계자가 이야기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쓴다. 이제는 그런 관행보다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자기의 얼굴을 드러내고 이름을 밝히면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스탠더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마이클 무어라고 불리고 있다.(웃음) 언론 환경이 제대로 다져지고 불법 해고 무효 판결이 나서 MBC로 돌아가게 되면 영화는 만들지 않을 것인가? <공범자들>과 <김광석> <저수지 게임> 등 저널리즘 다큐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저널리즘 성격이 강한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은 언론이 발전해 있는 나라에서는 드문 경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는 영화대로 방송이 갖고 있지 못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장르의 영화를 만들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은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는 천천히 깊게 사회에 스며드는 면이 분명히 있다. <공범자들>은 이야기가 들어가고 캐릭터가 만들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명백한 사실이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극장 밖으로 나오면 사라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 현실인 것이다. 지금 <공범자들>이 24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영화를 본 후 관객들의 감흥이나 각성이 굉장히 깊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 MBC와 KBS가 파업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과연 시민들이 이것을 지지해줄 것인지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공범자들>이 나오고 난 뒤에 여론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느낀다. 주위에서 다들 전화를 걸어와서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격려를 건네 와서, 그런 것에 감동을 느끼고 힘을 얻는다. 그게 영화의 힘인 것 같다.

영화 말미에 이용마 기자가 “우리의 싸움의 의미는 기록 그 자체”이며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공범자들>을 보며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 카메라와 녹음기를 무기로 들고 있는 언론인 주위에서 벌어진 일들이라 더욱 생생하게 기록된 측면이 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뒤 경찰이 KBS를 포위했을 당시의 언론사 내부의 풍경이 생생하게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놀라웠다.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니까.(웃음) 누가 찍었는지도 모르는데 남아 있는 영상들이 있다. 역사적 기록이지.

영화 속에서 이근행 PD는 정권의 부역자들을 향해 “역사에 남을 거다.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다. 역사를 무섭게 생각해라.”라고 말한다. 언론인의 양심과 슬픔이 담긴 말이었다. 섣부르게 희망을 가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이 혁명 전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백>이나 <공범자들>과 같은 영화가 역사가 일러스트/ Snowcat 판단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 같다.

언론이 살아 있으면 굳이 ‘역사’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거다. 이제는 언론인들이 적극적으로 기록한 사실을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면 당연히 국민들이 판단할 거다.

한국 저널리즘의 황금기가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노무현 정권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공영 방송뿐 아니라 모든 언론이 자유를 많이 누린 시기다.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에 의한 압력의 정도도 그때가 가장 덜했다. <PD수첩>에서 황우석 관련 보도를 할 때도 처음에는 청와대의 전화를 받았지만 우리가 정확한 팩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후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공범자들이 <공범자들>을 봤을까?

자신들이 영화에 어떻게 나왔을지 확인 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는 것은 그들에게도 굉장히 괴로운 경험일 테니 자신이 나오는 부분만 봤을 수도 있고. 모르겠다. 개봉 전 상영 금지 가처분 소송도 당했지만, 그게 오히려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됐다.(웃음)

<공범자들>은 액션, 코미디, 드라마, 스릴러 중 어떤 장르라 해도 말이 된다. ‘액션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이 영화에서 액션을 담당하는 건 주로 최승호 감독이다. (웃음)

우린 또 상업영화를 지향하니까.(웃음) 취재 과정 자체가 워낙 하드보일드하다. 운이 좋은 측면도 있었다. 이를테면 마지막 부분에 김민식 PD가 MBC 사옥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로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는 장면이 없었다면 영화가 심심했을 거다. 그 일이 일어나고 계기가 되어서 그렇게 많은 PD들이 페이스북 라이브에 동참할 거라는 걸 내가 짐작이나 했겠나. 굉장히 영화적인 사건이었고 공영 방송을 살리기 위해서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는 원래 객관화된 주관의 세계인데, 최승호 감독의 영화는 주관화된 객관의 세계에 가깝다. 객관과 주관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나?

물론 다큐멘터리에서 제시되는 사실, 팩트는 정확해야 한다. 추측을 배제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확인을 해야 한다. 영화가 빠질 수 있는 맹점은 확인 안 된 사실을 가지고 팩트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부족한 팩트를 얼버무리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는 것. 그런 영화들은 오히려 공감을 얻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보수에서 이야기하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인들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마라, 그냥 기계적으로 보도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최순실 게이트는 개판이 아니다”와 같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객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언론인들은 당연히 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객관주의는 무의미하다’는 걸 가지고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영화가 ‘수단이냐, 목적이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전자다. 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걸 통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까.

다음 다큐멘터리의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나?

재벌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다. 재벌 일가의 불법적인 세습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불투명한 부분들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를 영화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다면 아마도 상당히 재밌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물론 취재가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할 것도 없다.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사진Park Yongbin
일러스트Snowcat
출처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