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우 작가의 언어

아티스트 천경우의 작업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가장 흥미롭다는 그의 언어가 감지된다. 이미지, 시간, 경험과 기억, 자신과 타인에 대한 그의 쉼 없는 사색은 우리의 곤고한 감성을 곧추세운다.

작품/ ‘BreaThings #6’, 2018

몇 해 전, 베를린에서 뒤셀도르프로 가던 길에 브레멘에서 한나절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디자이너 빌헬름 바겐펠트의 고향임을 알리는 자그마한 뮤지엄, 우아하고 전통적인 컬렉션으로 도시의 부를 드러낸 쿤스트할레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촉박한 시간이었다. 분주한 걸음으로 도시의 중심을 걷는 사이 내 감각엔 보이지 않는, 결코 볼 수 없지만 분명 브레멘에 존재하는 작업 하나가 내내 마음에서 맴돌았다. 그 작업은 다름 아닌 브레멘 50개 거리 땅속에 묻힌 에너지 파이프라인에 적혀 있는 100개의 문장이었다. 아티스트 천경우는 브레멘 시민 100명에게 타인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각자의 글귀들을 요청했고 물리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표면에 그 문장들을 하나둘씩 새겨 넣었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글귀를 전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작업의 타이틀은 ‘보이지 않는 말들(The Invisible Words)’이었다. “제 작업실이 에너지 공사 발전소 바로 옆이었어요. 매일 자전거 타고 오고 가면서, 발코니에 앉아 담배도 피우면서 에너지에 대한 생각을 좀 오랫동안 했어요. 가스나 전기처럼 생각을 전달할 수는 없을까. 결국 제안을 하고 미팅을 하는 데만 거의 1년이 걸렸어요. 여러 기관의 협조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죠. 결국 2011년에 시작이 됐고 4년 만에 끝이 난 프로젝트예요. 몇 십 년 후에 땅을 파보면 남아 있을 거예요.” 그가 기억에 남는다며 들려준 몇 개의 글귀는 이런 거였다. ‘꿈을 꾸지 말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라.’ ‘아침에 친구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건 하루가 잘될 거라는 약속이다.’ ‘인생에 있어서의 변화는 두 번째 기회일 수 있다.’ 끝끝내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호기롭게 ‘브레멘에서의 특별한 예술적 경험’으로 간주한 그날의 기억은 미술관에서 본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18×1Minute’, Video based on performance, 2003.

‘1000 Answers’, Performance with installation, Liverpool Biennial, 2008.

‘Being a Queen’, 2007.

1990년대 중반 이래로 천경우의 작업은 주로 사진이라는 매체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사진이 갖는 고유함은 어떤 상황이나 현실, 인물을 포착한 ‘결정적 순간’ 아닌 시간의 경과, 작가와 카메라 앞에 선 이와의 조우, 그 안에서의 공감이나 대화를 통한 시간의 축적을 포함한다. 가령, 35세의 여성이 6일 동안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매일 35분 동안 카메라 앞에 앉아 있는다든지(‘Six Days’, 2003)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15분 동안 상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침묵 속에 머무는 행위(‘Versus’, 2007)처럼 그는 어떤 과정 혹은 퍼포머티브(Performative)한 상황을 동반한 ‘사진적 행위’를 지속해왔다. 몇 백 분의 1초가 아닌 15분, 몇 시간, 혹은 수일 동안의 장시간 노출은 흐릿함과 오버랩, 흔들림을 지닌 회화적인 상태의 사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사진은 철저하게 서양적인 것들, 물리적인 재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누가 다 생각해놓은 개념을 왜 따라야 하지? 그런 의구심이 강했죠. 지금껏 사진에 매달리며 사진을 새롭게 발견하는 중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된 거예요. 어떤 순간을 잡아내는 가장 현실적인 재현 매체라는 사진의 미학은 사실 몇몇 사람들, 몇 세대의 생각들로 자리매김된 거예요. 산업과 저널리즘에서 일어났던 미학들을 보면 쉽게 추론할 수 있어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혹은 물리적인 재현이 가장 중요했으니까요. 그건 사진의 한 분야에서의 이야기인데, 이것이 마치 사진 전체의 중요한 정체성인 양 자리매김되었죠.” 그의 이야기는 사진이 있는 그대로를 혹은 사실을 재현한다는 명제의 반대되는 지점을 통과한다. 오래전에 본 그의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그가 카메라 앞에 앉은 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미리 준비해 틀어놓고 서로 음악을 이야기해나가던 장면을 기억한다. “실제로 19세기 문헌기록에 보면 사진을 찍으러 스튜디오에 온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이미지만 중요했다면 그런 게 왜 존재했겠어요? 지적인 통제를 넘어서는 우연적인 요소들을 다르게 보려고 할 때 소유할 수 없는 경험의 결과들이 나오게 돼요.” 작가의 통제를 떠난 모든 우연적인 요소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상대적 관점, 타인과의 얼마 동안의 관계,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인지되는 시간까지. 증거와 사실이라는 보편적 사진 개념을 회의하며 돌파해간 천경우의 사진은 사색적 풍성함이 가득하다.

‘Versus’, Performance, 2007.

‘Versus #4’, 2007.

‘Perfect Relay’ 중에서, 2012.

그런 그가 최근 수년간 참여자들과의 과정이 중시되는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세계 여러 도시에서 행해왔다. 퍼포먼스는 사진 작업에 비해 공공의 상황과 자발적인 참여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거나 비밀로 간직했던 단 하나의 답변을 적어달라”는 작가의 요구에 관객들이 남기고 떠난 1천 개의 답변들(‘1000 Answers’, 2008), 스무 명의 참가자가 각자 처음 만나는 상대방과 랩으로 손이 묶인 채 20분 동안 나누는 악수(‘Greetings’, 2009), 지금 자신에게 떠오르는 소중한 이름들을 음악을 들으며 1분 동안 벽면에 적어 넣는 관객들(‘1000 Names’, 2009), 독일 괴팅겐과 창원에 사는 시민 300명이 그 도시의 생김새와 각자에게 특별한 기억의 장소를 드로잉한 프로젝트(‘Place of Place’, 2014). 일종의 예술적 중재자로서 천경우가 마련한 경험의 자리들은 참여자들을 조금은 낯설고도 이상한, 그러나 진실과 대면하는 시간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자신이 듣지 못한 내면의 소리들, 나를 존재케 하는 대상과 타인들에 대하여 잠시나마 명상적이고 감정적으로 감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일상의 공간에서는 사회가 정해준 역할 분담 혹은 직업으로부터의 선을 벗어나는 걸 용인하지 않아요. 그건 산업혁명부터 시작된, 사람들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자꾸 숨겨놓는 형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외의 것을 하면 딴짓 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딴짓 할 기회’를 주고 싶은 거예요. 어떻게 보면 공식적으로 용인해주는 거죠. 모르는 사람의 몸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허락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퍼포먼스를 통해 일종의 면책권, 여기서는 해도 된다는 자유를 통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관찰하는 거거든요. 그 자리에 모였던 참여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모든 충돌들이 우리가 지적으로 규정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천경우 작가의 작업실 책상. 작업 구상 노트와 드로잉이 놓여 있을 뿐 노트북이나 카메라는 없다.

천경우 작가의 10여 년 전 작업노트.

오래된 여행가방과 작업의 결과물들이 오브제처럼 놓인 작업실 한쪽.

뭄바이에서 진행한 ‘Dabawalla’s Lunch’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도시락통.

백자처럼 말간 천경우의 작업실에는 그의 오랜 작업의 흔적들이 고요한 오브제처럼 놓여 있다. 관객들이 자기 자신에게 쓰고 간 끝내 열리지 않을 비밀스러운 봉투들과 작업이 묻힌 브레멘의 거리들을 표시한 지도, 15명의 참가자들이 남겨놓은 각자의 사과 그림들. 천경우는 이것들이 마치 사람 같다고 했다. 이 방 안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는 셈이라고. 일종의 작가의 정신적인 공간인 이곳에는 노트북조차 없다. 정의되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들 사이에서 그는 이어지는 생각과 질문들을 정리해나간다. “예전에는 괜찮은 생각이 떠올라서 메모를 하려다 그걸 잊으면 너무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중요한 것이면 언젠가 다시 나오겠지 하는 여유가 좀 생겼어요. 계속 축적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포인트에서 나오겠죠.” 공교롭게 그의 멋진 퍼포먼스에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지만, 이따금 떠올려보게 되는 현장에서 펼쳐진 모든 풍경과 작가가 시발한 뜻밖의 질문, 그곳에서 각자가 짊어지고 간 오묘하고 따스한 감정의 어우러짐은 마치 짧은 소설 속 한 챕터의 플롯처럼 다가오곤 했다. “아주 단순한 것들을 여럿이서 해보면 어떨까? 그런 호기심과 필연성에서 시작이 돼요. 여럿이서 할 때 오는 느낌들이 있는데, 저 스스로도 몰랐던 저를 발견하게 되고 참여한 사람들도 몰랐던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그런 일들이 마구 벌어져요. 그리고 끝이 났을 때 각자가 갖고 가는 기억과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 사람만이 알겠지만 대부분 그 시간과 경험의 덩어리보다는 크다고 생각해요.”

오래도록 함께 해온 의자에 앉은 천경우 작가.

그는 곧 시작될 개인전 준비에 한창이다. 지난 15년 동안 여러 도시와 장소에서 벌어진 퍼포먼스들을 선별한 전시로, 서울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관객과의 만남과 경험이 요구되는 자리다. “어쨌든 제 궤적이니까 어떤 건 결과물의 일부인 것도 있고, 동시에 다시 구현되는 것들도 있어요. 우선 관람객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공간들이 많아요. 우리가 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느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게 많거든요. 그런 걸 일깨워주는 시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는 어쩌면 ‘평범함의 비범함’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경우의 얘기대로 ‘결국은 자신과 스스로 대화하는 방식들의 시도’가 예술의 섬세한 정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앞의 나를 반추하며,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 예술은 우리 삶에 방만한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그 존재의 심연이 드러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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