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하누카와 콴자

꼭 크리스마스만 크리스마스인 건 아니다. 백인들의 크리스마스와 유대인들의 하누카와 흑인들의 콴자에 대한 짧은 단상.

나의 룸메이트였던 샤론이 유대인 혈통임을 알게 된 건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둔 어느 저녁이었다. 역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창밖으로 큰 촛대를 들고 뒤뚱거리며 걷는 샤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말로만 들었던 하누카 촛대였다. 샤론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에 촛대를 놓아도 되겠냐고 내게 물은 뒤, 대답할 새도 없이 제 가족사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독일인이고 아버지가 유대인이었는데, 블라블라…. 추수감사절 저녁식사에 초대되었을 때 유독 그 아버지가 매사를 신랄하게 놀리며 수다를 떠는 게 좀 피곤했는데,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는 버니 샌더스 지지자였다.)

하누카는 유대인들이 크리스마스 대신 보내는 연말의 명절쯤 된다. 아홉 개의 초를 세울 수 있는 촛대를 놓고 하루에 하나씩 불을 붙이며 이디시어로 짧은 기도문을 외운다. 물론 남쪽 윌리엄스버그에 모여 사는 검은 옷과 꼬불꼬불한 구레나룻의 오소독스 유대인들은 훨씬 복잡하고, 경건하고, 근본주의적으로, 빡빡하게 일정을 소화하겠지만, 샤론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다만, 주문을 외우듯이 기도하는 샤론이 조금 낯설어 보였다. 10년 전에 힙스터들이 쓰던 안경이라고 내가 놀리던 웰링턴 뿔테 뒤로 감은 눈이 그날따라 더 움푹 들어간 게, 왠지 유대인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짧은 기도를 마치더니, 샤론은 내게 감자를 갈아달라고 했다. 하누카에 유대인들은 올리브유에 감자를 부쳐 먹는다. 강원도 사람들도 똑같은 음식을 먹으니 내가 직접 해보겠다고 했다. 감자전과 흡사하다. 다만, 올리브유에 부치는 게 특별한 것이다. 별로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하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하누카에 클로브를 오렌지 껍데기에 박아 문양을 만든다. 그걸 와인에 넣어 끓이건 그냥 장식하건 상관은 없는데, 나는 그게 꽤 예뻐서 거리에서 사 온 트리용 생나무 한쪽에 매달아놓았다. 유향을 든 동방박사 오너먼트와 <나 홀로 집에>에서 도둑 2로 나왔던 다니엘 스턴의 사진 사이였다.

비치 보이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놓고 에그노그를 마시며 얼굴이 벌개졌을 무렵,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아래층에 사는 레스터가 또 친구들과 복도에 앉아 미적거리는 모양이었다. 레스터는 필리피노 엄마와 말리 출신 아빠를 두고 영국에서 태어나 뉴욕으로 옮긴 세상 편한 한량이었다. 무슬림이라서 무하마드인지 신드바드인지 하는 이름이 있었는데, 나는 그냥 레스터라는 본명으로 불렀다. 레스터에게 샤론이 유대인인 거 알았냐고 말을 건넸더니, 그는 콴자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알지. 그거 너희 흑인들이 맨날 피우는 거잖아.” “아니, 간자(Ganja) 말고 콴자(Kwanzaa).” ‘햇과일’이라는 뜻을 가진 콴자는 1966년 미국에서 새롭게 개발한 흑인들만의 축제다. 흑인들이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옹립해보려고 했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나 커티스 메이필드의 펑크 음악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울라나 카렝가라는 흑인 인권운동가가 흑인들만을 위한 크리스마스를 창안한 것이다. 백인 중심의 문화와는 별개의 세계관을 창안하고자 했던 흑인들의 의지가 반영된,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로 발명된 현대의 축제인 셈이다.

그런데 레스터는 콴자를 좀 실없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는 뉴욕에 사는 흑인들 대부분이 신실하게 ‘아멘’을 외치는 상황에서 흑인들만의 자리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었다. 오히려 다시키(Dashiki)라고 불리는 알록달록한 복장을 차려입고 단체로 북을 두들기며 춤을 추는 콴자의 만들어진 전통이 흑인 문화의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고, 결국 타자화(Otherized)시킨다고 똑똑한 척했다. “그래, 그렇겠지. 근데 콴자 때 흑인들은 뭘 먹어?” “나도 관심 없어. 닭 튀겨 먹고, 포도 맛 환타나 마시겠지.”

유대인의 입김이 유독 세고, 흑인들의 로컬 문화를 지원하는 각종 행사가 마련된 뉴욕에서는, 어쨌거나 꼭 크리스마스만 크리스마스인 건 아니다. 놀 핑계만 찾아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 전에 하누카를 보내며 놀고, 크리스마스에 정점을 찍으며 놀다가, 12월 26일부터 1월 1일까지는(박싱 데이 세일과 함께) 콴자를 보내며 놀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가 발전해가는 과정은 소수자의 생존을 위해 엄격하게 적용해야 했던 지난날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소수자 우대 정책)과는 조금 다르다. 긍정적 차별이라고도 불리는 어퍼머티브 액션은 소수자에게 일정한 자리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제도나 규율을 통해 반강제적으로라도 실천해야 했던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문화적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말하자면, 현재 영화계에 가장 중심에 놓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블랙 팬서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블랙 위도우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처럼, 전 세계의 모든 대중음악이 흑인 음악의 수혜를 입고 있는 것처럼, 또는 LGBT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온 가족이 즐기는 천진난만하고 밝은 모두의 축제가 된 것처럼, 여기에는 단순히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정량적으로 계산해낸 균형 이외의 논리가 존재한다.

전 세계인이 종교와 무관하게 먹고 노는 휴일 중 하나지만, 크리스마스는 엄연히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날이다. 즉, 크리스마스의 영향력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는 유럽과 북미 중심의 백인 문화가 가진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적,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가진 공동체에서는 크리스마스의 전 지구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대체하는 말로 “해피 홀리데이”를 쓰는 것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주 들리는 ‘온누리에 축복’이라는 표현이 백인 이성애자 남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한번 생각해봄직하다. 물론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기 위해 빅토리아 시크릿 사이트나 뒤지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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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 유진(칼럼니스트)
출처
4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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