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테브로 수도원의 세렌디피티

드로잉이 복도를 수놓고, 비디오 설치작품이 방 안을 채우며, 거대한 조각작품이 정원을 장악하고 있다. 예술로 충만한 프랑스의 호텔들로 당신을 초대한다.

Abbaye Royale de Rontevraud
퐁테브로 수도원

Add 49590 Fontevraud-l’Abbaye, France
Tel +33 (0)2 46 46 10 10
www.fontevraud.fr

수도원 안에는 곳곳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웅장하지만 절제된 수도원 경내가 경건함을 자아낸다.

1101년에 세워진 퐁테브로 왕립수도원은 포아투, 앙주, 튜렌 지방을 총망라 하는 중세의 가장 거대한 수도원이었다. 특히 이곳엔 영국의 플랜태저넷 왕가의 왕릉이 있는데, 헨리 2세와 사자왕 리처드가 묻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세워진 후 7세기 동안 전 유럽의 수도사들과 왕가의 귀족들을 영접하던 이곳은 1804년 나폴레옹으로 인해 감옥으로 변한 뒤 1963년에야 해방되어 현재 예술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14헥타르에 달하는 퐁테브로 수도원을 세운 것은 설교자 로베르 다르브리셀(Rober d’Arbrissel)로 그는 혁신적인 정신과 격렬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이상적인 도시이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원했다. 그의 정신은 천년의 시간을 지나 미래로 향하며 현재에도 퐁테브로에 이어지고 있다. 퐁테브로는 현재 아티스트 레지던스, 학회, 2017년에 미쉐린 가이드 원 스타를 받은 티보 루제리(Thibault Ruggeri)의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로 이루어져 있다.

퐁테브로 수도원 안에 위치한 미쉐린 원 스타 레스토랑, 티보 루제리.

“특히 미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퐁테브로는 친환경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도원에 있는 건물들은 태양광 패널과 자연적인 냉방 시스템을 이용합니다. 원예가 올리비에 듀랑을 중심으로 네 개의 커다란 채소밭을 일구고 있고, 채소를 비롯해 아로마 허브, 식용 꽃도 재배되고 있죠. 아, 물론 티보 루제리의 레스토랑에서 주재료로 쓰입니다.”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지역에 채소를 공급하기도 하는 이 밭에서는 농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수도원은 여러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장관을 이루는 건물은 1105년부터 1160년까지 세워진 드높은 고딕 양식의 수도원 성당이다. 이곳에는 사자왕 리처드와 헨리 왕을 비롯한 왕가의 묘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하학적인 정원을 가지고 있는 수도원 경내도 장관이다. 또한 수도원의 수사들이 회의를 열던 참사회장은 수도원 성당과는 다른 멋이 있다. 수도원 성당의 높은 천장은 신과의 수직적(영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대신 참사회장의 낮은 아치형 천장은 신과의 수평적(속세적) 관계를 상징한다. 그 외에도 수도원 안의 건축물 중 가장 기발한 건물로, 뒤집어진 반원뿔형 지붕이 낮게 내려오는 건물은 특이하게도 19세기부터 부엌으로 쓰였다.

천 년의 시간을 증축해오면서 퐁테브로에는 12세기부터 21세기까지 여러 장르의 건축이 쌓여왔는데,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루아르 지방의 백색 투포(Tuffeau) 돌 덕분이다. 특히 2000년대에도 엄청난 양의 외곽 벽의 돌을 새로 채석장에서 채굴하여 아버지에게서 석공일을 배운 콤파뇽(Compgnons de Devoirs, 중세부터 내려오는 프랑스 장인들의 길드) 출신 에마누엘 타푸(Emmanuel Taffu) 팀이 돌을 조각하고 갈아 개축하였다. “투포 돌을 채굴하는 회사는 전 프랑스에서 이제 5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주 귀한 돌입니다. 천 년의 시간이 넘어도 중세의 재료로 다시 보수가 가능하다는 점은 경이롭지 않을 수 없죠.”

옛 수도원장의 관사는 안락하고 절제된 느낌의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54개의 방과 회의실, 그리고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은 축소된 팔레트를 정화한 느낌으로 디자인되었다. 고급 자재와 정교한 디테일에서 고급스러움을 엿볼 수 있지만 절대로 과시하는 느낌은 없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주앙 만쿠(Jouin-Manku)의 재능이 이와 같은 우아함을 빚어냈다.

어느 늦은 밤, 마을에서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고 늦여름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수도원으로 돌아왔을 때가 떠오른다. 호텔 투숙객은 밤에도 수도원 곳곳을 산책할 수 있는데 낮에는 느낄 수 없었던 고요함이 근사했다. 마르세유의 뮤과 도하의 여러 건축물의 조명을 도맡은 조명 디자이너인 얀 케르살레(Yann Kersalé)는 밤의 수도원을 더없이 근사하게 빛으로 장식해놓았다. 수도원 경내 정원의 한가운데에 앉아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여름밤의 별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전시라고 쓰여 있는 수도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2층으로 올라가자 어둠 속 저 멀리서 빛나고 있는 비디오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 번째 퐁테브로 라센의 수상자인 영화계 출신 비디오 아티스트 베르트랑 가덴(Bertrand Gadenne)의 작품들이었다. 그 작품들 가운데 ‘라 뷸(La Bule, 비눗방울)’은 어린 소년이 손가락으로 만든 비눗방울 안에 숨을 내쉬어 비눗방울을 한껏 부풀리는 시퀀스가 무한반복된다. 작은 남자아이의 몸이 들숨 날숨으로 오르내리며 그 숨으로 인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주는 이 작품은 그 리얼함이 오히려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신비로운 체류의 단편들(Fragments d’un Passages Mythologique)>이라는 전시명조차 더없이 아름다웠다.

클로드 레베크의 ‘여름의 죽음 (Mort en ete)’

가덴의 작품들을 지나서 복도 끝을 바라보니 붉은 빛이 흘러 나오고 있다. 전에 수도원의 기숙사로 쓰였던 이 큰 홀로 들어가자 숨이 멎을 것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온 방이 붉은 조명으로 물들어 있는 가운데 작은 목조선들이 여기저기 표류하듯 놓여 있고 천장에서부터 물결 모양을 따라 수직으로 내려오는 붉은 LED 조명이 드리워져 있었다. 더욱 신기한 점은 관람객의 움직임을 센서가 캡처하여 실로폰 소리가 따라오는 것이었다. 클로드 레베크(Claude Lévêque)의 ‘여름의 죽음(Mort en été)’이라는 제목의 이 강력한 설치작품은 작가의 모호한 여정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작가의 마음에 남아 있던 마술 같은 기억들, 현재 우리 사회의 억압에 대한 질문, 이런 것들을 레베크는 공간과 조명 그리고 음향을 이용하여, 건축과 그 장소의 사용성에 대한 의미를 내포한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세상의 끝,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에 온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헨리 2세와 엘리노어 여왕의 횡와상. 퐁테브로는 플랜태저넷 왕가의 분묘이기도 하다.

한동안 레베크의 작품 안에서 꿈꾸듯 시간을 보낸 나는 지도상에 나와 있는 마지막 작품을 보러 가기로 했다.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은 바로 지하 납골당! 낮에도 으스스한 그곳을 한밤중에 내려가보려니 걸스카우트 캠프에서 했던 담력 테스트가 생각나지 않는가. 하지만 계단을 밟으면서 나의 걱정은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줄리앙 살로(Julien Salaud)는 지하의 아치형 공간에 못과 흰 실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수난’과 루아르 지방에 많은 올빼미가 밤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이 실들은 자외선을 방출하는 블랙 라이트를 맞아 환상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끝에는 피에타와 같은 모습의 그리스도 대신에 올빼미를 안고 있는 석고상이 놓여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주앙 만쿠의 재능이 만들어낸 안락하고 절제적인 느낌의 인테리어.

밤이 늦도록 수도원 경내를 다니던 우리는 안락한 호텔 침실로 들어와 단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에 호텔에서 맛본 아침식사는 정갈하면서도 관대한 수도원을 닮아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는 살롱은 채소밭이 가운데에 있는 코트야드를 둘러싼 유리 구조로 아늑한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갓 구운 호밀빵에 여러 가지 에피스가 들어간 케이크, 오랫동안 저온으로 익힌 달걀, 각종 햄과 수도원 근처에서 생산되는 치즈,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꿀과 여러 가지 잼, 시리얼을 비롯한 각종 과일과 주스. 퐁테브로 수도원에서의 모든 것은 예기치 못한 아름다운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세런디피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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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사진 Julien Webber
출처
47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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