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다고?

지금의 플라스틱 행성에서 살아남는 방법? 그건 플라스틱 빨대나 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 이상의 문제다.

평소처럼 카페에서 아이스 음료를 주문하고 나오는데 친구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왜 자꾸 종이 빨대를 주는 거야? 이건 15분만 지나도 흐물흐물해진단 말이야. 스타벅스가 플라스틱 빨대를 없앤다더니 세상 모든 카페가 따라 하기 시작한 거야?” 충격적이었다. 친환경적인 운동을 비난할 수 있다니, 그것도 혼자 궁시렁거리는 게 아니라 당당히 누군가에게 동의를 구하다니 말이다!

스타벅스가 2020년까지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없애기로 했다는 것을 비롯해 맥도날드와 네슬레, 하얏트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안티-플라스틱 캠페인을 벌인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난 ‘아, 참 좋은 일들 하는구나’의 입장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2018년 세계 환경의 날 키 메시지인 ‘#BeatPlasticPollution’ 태그를 단 게시물(6만 개 이상의 멋진 셀피가 검색된다)을 볼 때 역시 ‘요즘엔 친환경도 힙해야 하는구나’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꾸는 선한 일인 것은 분명하나 내겐 그냥 ‘남 일’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 환경부가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을 규제한 8월 1일부터 안티-플라스틱 캠페인은 ‘내 일’이 됐다. 맥도날드에서는 콜라를 담는 종이컵에 커피를 주기 시작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고(커피에서 콜라 향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촬영 케이터링으로 주문한 아이스 음료는 10잔이 모두 뜨거운 커피를 담는 종이 컵에 배달돼 모두를 혼란에 빠트렸다. 친구처럼 말은 못해도 솔직하게 두 번 정도는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 ‘텀블러 들고 오면 할인해주는 캠페인이면 됐지, 이걸 법적으로 꼭 규제해야 돼?’

갑자기 왜 세계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비롯한 거대 기업들이 안티 플라스틱 캠페인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냐고 묻는다면, 직접적으로는 아마 UN에서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플라스틱 퇴치’를 선언했기 때문일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실제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오염이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달했기 때문이다. 바다거북의 코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제거하는 영상이나 약 1조 8천 개의 쓰레기가 뒤엉켜 만들어진 섬 ‘플라스틱 아일랜드’ 사진은 한낱 끔찍한 인터넷 ‘짤방’이 아니다. 생명과학 분야 학술지인 는 지금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이 약 5조 2천억 개이고 지구 해양 표면의 88%는 이미 플라스틱 파편으로 오염돼 있으며, 세계경제포럼은 이 속도라면 2050년엔 바다 속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쓰이는 1만 가지 물질 중에 유해성 여부가 확인된 것은 단 11개뿐이고 미세 플라스틱을 함유하지 않은 수산물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 그러니까, 지구의 미래는 물론이고 당장 우리 건강에도 치명적이란 얘기다.

이쯤에서 이기적이고 민망한 질문,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로 돌아가보자.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그래야만 하며 오히려 그 범위를 확대시켜야 한다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특히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이 문제를 개인의 선택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거다. 생물학자 엘리자베스 R 데섬버는 저서 <어째서 좋은 사람들이 환경에 나쁜 짓을 하는가?(Why Good People Do Bad Environmental Things)>에서 환경이 모든 사람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걸 기대해서도 안 되며(일회용 컵 사용 규제가 있기 전까지 플라스틱과의 전쟁이 그저 인스타그램 포스팅 중 하나였던 사람이 과연 나뿐일까?), 때문에 구조적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내 주변만 둘러봐도 적극적으로 텀블러와 비닐을 대신할 천 가방을 늘 상비하고 다니는 사람은 채 세 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악마가 아니라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은 환경의식을 가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혹은 평범한 우리들보다는 좀 더 예민한 환경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소비자’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텀블러를 꼭 챙기지만 ‘삼다수’만은 포기하지 못한다거나 환경 단체에 매달 소소한 후원 아끼지 않으면서 분리수거에는 무감한 경우도 꽤 흔하다. 데섬버는 환경에 관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할 만큼 했다’는 만족감에 시야가 좁아져서 오히려 여타의 환경 문제에는 둔감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개인이 환경 문제에 갖는 관심,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하는 환경부의 규제, 빨대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캠페인이 가치 없는 일이라는 게 아니다. 다만 오염을 야기하는 사업을 제한하거나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형성할 수 있게끔 하는, 즉 ‘소비’에 국한된 것 이상의 근본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거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은 페트병이나 비닐로 포장된 식료품은 물론이고 맥주 병뚜껑 안쪽에 발라진 비닐, 아이들 장난감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플라스틱을 거부하는 삶을 실험해 본 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실험 초기 우리의 질문은 ‘그것이 가능한가?’였다. 그리고 결국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얼마나 더 ‘널리’ 가능할 수 있는가다. 우리는 이제 시스템적인 변화에 매진하려 한다. …(중략)… 내가 한 사람 몫 이상의 것을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적게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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