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집

밀레니얼 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코리빙은 미국, 런던, 서울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실험 중인 새로운 주거 형태다. 지금 그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미국 내 가장 많은 지점을 갖고 있는 코리빙 스페이스 커먼은 전 지점을 관통하는 일관된 룩 & 필을 위해 공간 총괄 디렉터를 두고 있다.

위워크(WeWork) 창업자 아담 노이먼은 고국 이스라엘의 유대인 주거공동체 키부츠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질풍노도를 겪던 그 시절 그는 어느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크게 의지했다. 그는 함께 산다는 것은 혼자인 것보다 훨씬 나은 형태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미국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사 온 뉴욕의 어느 삭막한 아파트에서 그는 일일이 이웃집 벨을 눌러 커피 한 잔씩을 대접하며 사람들과 어울려봤다. 서로가 안면을 트고 난 후의 아파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됐다. 오해와 다툼은 줄었고 에티켓을 더욱 준수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제안과 해결책이 오고 갔다.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근사한 공간 그 자체라기보다 그 안에 감도는 기분 좋은 에너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위워크와 위리브(WeLive)는 결국, 좋은 입지의 땅값 비싼 건물의 일부 층을 임대해 최대한 작게 책상이나 침실을 쪼개서 여러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비즈니스다. 잘 가꾼 커뮤니티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칙연산으로는 도출되지 않던 플러스 알파의 긍정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1백70평 부지에 너른 정원까지 딸린 2층 양옥집을 개조한 하품 하우스는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4백 미터 거리에 있다.

위워크의 주거 버전인 위리브는 스피크 이지 바, 런드리, 독서 라운지 등 서로 마주칠 만한 공용 시설을 전략적으로 가장 바쁜 동선에 심어놨다.

2016년 4월 뉴욕 월가에 1호점을 낸 위리브는 개인 원룸부터 하나의 룸 안에 2~4개 개인 침실이 있는 구성 등으로 총 2백여 개 침실을 커버하고, 화장실은 모든 침실에 개인용으로 설치했다. 완벽한 설비와 집기를 갖춘 부엌과 애플 TV가 있는 공용 미디어 라운지, 도서관, 핑퐁 테이블, 런드리 전용 층, 스피크 이지 바 등 질릴 틈 없는 다채로운 공용 공간이 주어진다. 커뮤니티 매니저가 상주하고 있음은 물론 위리브 전용 모바일 앱으로 이웃과 소통하고, 청소 서비스를 신청하고, 다양한 소셜 이벤트 소식을 주고받는다. 위리브가 여의도 금융 빌딩 내 몇 개 층에 걸쳐 있는 느낌이라면, 브루클린에서 더 먼저 시작한 커먼(Common)은 경리단길 언덕배기의 협소 주택에 가깝다. 2015년 10월 윌리엄스버그 지점을 시작으로, 현재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6개 주요 도시에 16개 지점, 6백20여 개의 침실을 굴리고 있다. 미국 내 가장 많은 지점을 갖고 있는 프랜차이즈 셰어하우스인 셈. 커먼은 특히 내부에 전문 디자인 디렉터를 두고 체계적인 ‘룩 앤 필 (Look & Feel)’을 따르는 걸 중요시하는데, 설립자 브래드 하그리브스(Brad Hargreaves)는 이를 ‘사용자 경험’이라 일컫는다. 2021년까지 20개 도시 2만 5천 개의 침실 확보를 예정 중인 커먼은, 일관된 신뢰의 선택지가 되는 것이 목표다. 한편, 뉴욕에 위리브가 문을 열던 시기 런던에 등장한 세계 최대 규모의 코리빙 스페이스 더 컬렉티브 올드 오크는 거대한 주거 실험에 가까운 시도다. 1만 6천 제곱미터 부지에 건물 두 개가 교차된 형태의 10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해 5백50여 명이 함께 산다. 런던 도심에서 전철로 30분 거리니까 걸어서 갈 거리에 테이트 모던이나 하이드 파크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아예 작정하고 다양한 레스토랑, 스파, 도서관, 영화관, 코워킹 스페이스 등 모든 시설을 내재화한 초대형 크루즈를 연상시킨다. 입주자의 게스트가 있는 경우, 하룻밤에 50파운드를 내면 호텔방을 잡아주듯 별도의 게스트 공간을 사용할 수도 있다. 여느 코리빙 스페이스처럼 요가 수업이나 요리, 토크 이벤트, 독서 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우리가 입주민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결국 또 하나의 솔루션이에요.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를 통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바꿔가고자 하는 것이죠.” 더 컬렉티브의 설립자 레자 머천트(Reza Merchant)는 말한다. 그러나 공간 입주자들의 평균 거주 기간이 8개월에서 일 년 3개월 남짓한 점은 이곳의 특성이자 한계로 보인다. 10년차 뉴요커인 딜로이트 디지털(Deloitte Digital) 뉴욕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상인도 최근 이사를 하며 버즈피드에서 익히 들어온 커먼과 위리브를 알아보긴 했다. “인테리어가 제 스타일이 아니긴 하지만 우선 사진과 같이 꽤 잘 해놨어요. 직업상 자주 옮겨다니며 단기적으로 살 곳을 구한다면 호텔보다는 싸고, 계약상 문제도 편리하니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거주할 곳을 찾는 대다수의 로컬들에게는 룸메이트와 살면 훨씬 월세를 떨어뜨릴 수 있고 프라이버시도 지킬 수 있는데 굳이 내 삶의 일부를 공용 공간에 오픈해놓고 지낼 필요가 있을까요?”

런던 북서쪽 윌레스덴 정션의 더 컬렉티브 올드 오크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코리빙 스페이스로 전용 건물에 5백50가구가 산다. 출입구가 있는 1층은 부티크 호텔 로비를 닮았다.

뉴욕이나 런던 부럽지 않게 인구 밀도가 높고 집값 비싼 서울은 어떨까. 서구에는 없는 전세금이나 높은 보증금이 없는 고시원, 원룸, 저가 오피스텔의 쳇바퀴를 전전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강남역 한복판 1백70평 부지에 2층짜리 양옥 주택을 개조해 문을 연 하품 하우스 & 카페는 그 쳇바퀴 안에서 당장에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지런히 실험 중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을 이끌던 김호선 대표 스스로도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할 당시 비좁은 셰어하우스에서 거실에 파티션을 치고 살아본 경험이 있다. “넘쳐나는 1인 가구를 위한 대안이 원룸, 오피스텔, 고시텔로 지극히 한정된 현실에서 초기 세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자 했어요. 고시원이나 반지하 원룸 대신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밥을 먹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집다운 집. 낯선 동네에서 한꺼번에 40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것도 장점일 수 있고요.” 하품 하우스는 1층 남자방에 16개 침대, 2층 여자방에 24개 침대를 갖추고 있다. 소수의 1인실과 2층 침대 형식의 4인실, 8인실에 놓인 2층 침대로 개인 공간은 최소화하는 대신,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해먹이 달린 정원, 창업 토크 행사가 종종 열리는 대형 워크 테이블이 있는 1층 카페, 여자방, 남자방 내 거실과 주방 등의 공용 공간은 널찍하게 확보하고자 했다. 3개월 기준 보증금 3백50만원에 8인실의 경우 49만원 월세와 관리비 및 공과금 명목의 10만원이 별도로 붙는다. 기본 가구와 그릇, 기기, 휴지, 세제, 청소 서비스를 일체 포함하는 개념이다. 8월에 있을 7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 서준희는 본격 시험 대비를 앞두고 본가가 있는 파주에서 나와 하품 하우스 4인실에 입주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 반까지 이어지는 학원 수업 중간에 집에 들러 밥을 해 먹고, 1층 카페에서 입주자에게 무료 제공되는 커피를 즐기며 공부를 하기도 한다. “학원에서 2분 거리예요. 전에 지내던 고시원보다는 덜 삭막하고 안전한 분위기라 좋아요. 저는 친구를 사귀러 왔다기보다 공부가 주 목적이다 보니, 정해진 목표를 기간 내에 달성해 기분 좋게 떠나고 싶은 임시 거처에 가까운 게 사실이죠.”

사회학자 노명우는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말한다. 키부츠건 실버타운이건 고시원이건 힙스터 냄새를 지울 수 없는 코리빙 스페이스건, 사람들은 계속해 좋은 입지 환경을 바라보고 비용 절감을 위해 함께 사는 방식을 꾸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문득 버지니아 울프가 21세기 서울 강남에 살았다면 그는 어떤 공간과 타협해 존재의 이유를 찾았을까 궁금해졌다. 건강한 개인들이 모여 사는 건강한 집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그리고 영원히 ‘자기만의 방’과 ‘5백 파운드의 돈’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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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 은아(월간 디자인 기자)
사진 ©WeLive, ©Common, ©The Collective Old Oak , 하품 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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