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 밀리 Reece Mealy
아모리쇼 갤러리 세일즈 디렉터
직업병일까? 나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페어에서 소개되는 갤러리의 작가들로 향하게 된다. 주로 벽에 걸 수 있는 큰 사이즈의 추상 작품에 눈길이 머무는데,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런 작가들은 내 예산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 있기 때문에 좀더 현실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두 작품을 골라보았다. 캐롤라인 아켄인터(Caroline Achaintre)의 작업은 작년 아트 브뤼셀에 참가한 아케이드 갤러리에서 처음 보게 되었는데,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태피스트리에 반하고 말았다. 보드랍고 휘몰아치는 털실의 질감(보면서 잠들기에 완벽하다!)과 대조되는 역동적이고, 활기차고 원시적이기도 한 이 작품을 내 침실의 침대 앞에 걸어두고 싶다. 또한 파멜라 조던의 기하학적 캔버스 위에서의 추상 표현주의 작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 아름다운 작품을 욕실에 걸고 소용돌이 무늬를 바라보면서 자쿠지 욕조에서 거품목욕을 하는 상상을 해본다.
허시영 Hur Siyoung
PKM 갤러리 디렉터
나는 행복하게도 ‘꿈의 컬렉션’에 가장 포함하고 싶은 두 작가의 작품을 이미 소장하고 있다. 단색화를 대표하는 윤형근 작가의 작품은 내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다. 머리 위의 작품이 마치 수호천사처럼 나를 좋은 꿈속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작가는 추사 김정희의 서예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평면 속에서 깊고 넓은 명상의 공간을 자아낸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두 가지 색은 희석된 엷은 층으로 수십 겹 쌓여 고요하지만 강렬하고, 섬세하면서도 견고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 선비정신의 우아함과 자연의 담대함을 품고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이상남 작가의 그림은 거실에 걸었다. 그의 기하학적 추상은 경쾌한 색상과 예리한 선들로 역동적인 도시의 풍경을 담는다. 현대 문명의 모든 인공적인 요소를 조형적 언어로 재구성한 작품은 첨단 공간에 놓인 우리의 일상을 세련된 미래 언어로 이야기한다.
홍이지 Hong Leeji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보면 이 세상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자신의 집 거실에 키스 해링, 고흐, 루소를 걸어놓은 장면이 나온다. 모든 것이 파괴된 도시에서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에게 이 작품들은 그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를 주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주인공이었다면 아마도 아그네스 마틴의 ‘밤바다’를 침대 머리맡에 두었을 것 같다. 나에게 아그네스 마틴의 작업은 아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과도 같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녀의 그림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파괴된 바깥 세상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데비 힐야드 Debbie Hillyerd
하우저 앤 워스 시머싯 교육부
나는 식탁 가까이의 벽에 어거스트 샌더(August Sander)의 사진 ‘Boxer’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사진을 ‘읽는법’을 가르치곤 했다. 각 인물의 성격과 차이점, 예를 들어 그들의 이름이 무엇일지, 왜 한명은 버거를 먹고 싶어하고 다른 이는 닭고기 샐러드를 먹고 싶어할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샌더는 이 인물들을 독일에서 촬영하였는데 그들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분류하였다. 샌더의 이 사진은 나란히 선 두 복서를 보여준다. 특이한 한 쌍이다. 왼쪽의 인물은 키도 크고 굳은 상태로 자신이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른쪽의 인물은 히죽거리고 있고 체격 또한 상대방에 못 미치지만 훨씬 여유 있어 보인다. 우리는 그 둘이 육체적 결투를 하면 누가 이길 것인지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삶은 육체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지 않는가. 소장하고 싶은 또 다른 작품은 댄 그레이엄(Dan Graham)의 ‘Pavilion’. 나는 나의 집이 건축과 예술의 결합이길 바란다. 바쁜 업무와 집안일에 치이다 보면 집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생활에 가까워진다. 나는 깨끗하게 정돈된 미니멀한 명상 공간을 꿈꾼다. 동시에 나의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혼돈 조차도 사랑한다. 댄 그레이엄의 파빌리온은 친숙해 보이지만 의미 있는 장애물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다가가 참여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김기범 Kim Kibum
Skibum MacArther 대표, 소더비 인스티튜트 교수
약간의 반칙이겠지만, 일레인 스터트반트(Elaine Sturtevant)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 Torres) 작품을 차용한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 이 작품을 선택함으로써 예술의 독창성이라는 기존의 관념에 도전한,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두 작가와 동시에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나의 영웅이다. 에이즈로 잃은 이들에 대한 주제로 작업한 시적이고 가슴 아픈 작품들은 개념적이고 미니멀한 예술이 감동적인 여운과 정치적 면모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에 달린, 시간이 지날수록 필연적으로 어두워지는 불빛은 연약하고 눈부신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일레인 스터트반트는 앤디 워홀이나 프랭크 스텔라 같은 남성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베끼는 작업을 엄격하고 예리하게 진행하였다. 그녀에게는 영향력 있게 성장할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내는 매서운 눈이 있었다. 그녀는 진보적인 미술계에 정형화된 남성우월주의에 도발적이고 체제전복적인 방식으로 대항하였다.
황유경 Hwang Yookyung
Kim Art Lab 어소시에이트 디렉터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은 침실에 걸어놓아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정신적 사유를 반영하는 마틴 작품의 무수한 점들은 내면으로의 사색을 유도한다. 명상을 할 수 있는 은은한 분위기의 침실을 만들어주는데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요세프 알버스의 ‘사각형에 대한 경의’는 서재 한쪽에 걸어두고 싶다. 사각형이 가득한 서재에 알버스의 대표 저서 <색채구성>과 그의 부인 애니 알버스의 <직물 세계에 대한 고찰>과 함께 ‘사각형에 대한 경의’ 한 점을 배치한다면, 진정으로 사각형에 대한 오마주를 실천하는 서재가 되지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고른 작품은 마티스 컷아웃의 진수를 보여주는 ‘재즈’ 연작이다. “미술은 육체적인 피로로부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안락의자 같아야 한다”라는 마티스의 말을 연상시키는 재즈 연작은 섬세하고 유연한 선과 색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재즈 연작을 거실에 걸어두고 찰리 파커의 음악을 듣는다면 매일매일 편안하고 환상적인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유승은 Yoo S. Euna
Sey Artnet 대표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아름다운 추상 작업으로 표현하는 작가에게 매료되는 편이다. 시간, 중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작가는 세상에 대한 관찰력과 이해력이 남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작품들을 늘 곁에 두고 살면 인생의 해답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케이지 우에마츠(Keiji Uematsu)의 작품은 우주의 질서를 단순한 형태의 조각으로 깨우쳐주는 힘이 있다. 공간의 중심이 아니라 구석 자리에 무심하게 설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자연과 인간문명의 공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세련된 설치작품으로 풀어내는 작가 정소영의 작품도 소장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추가하고 싶은 것은 에토레 스팔레티 (Ettore Spalletti)의 회화작품. 빛을 받으면 온 방 안이 작품의 색으로 물드는 효과를 내기 위해 빛과 색의 원리를 깊이 연구한 작가다. 종교적인 경건함과도 관련이 있어서 서재 같은 조용한 공간에 두면 좋을 것 같다.
오사카 고이치로 Osaka Koichiro
Asakusa 갤러리 대표
집은 내가 앉고, 쉬고,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는 곳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활동의 넒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예술은 나의 생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조용한 방에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듀오 폴린 부더리(Pauline Boudary)와 르네 로렌츠(Renate Lorenz)의 작품 ‘Toxic’를 설치하겠다.(이들의 작품은 작년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선보였다.) 이 작품에서 펑크족과 드래그 퀸으로 보이는 두 주인공은 모두 성별이나 출신이 모호해 보인다. 그중 한 명은 1980년대 장 주네의 인터뷰를 재현해낸다.
음정우 Eum Jeongwoo
서울 옥션 경매사
현대적인 주거 공간에 한국의 고화를 전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적절한 배치가 이루어진다면 고화에 담긴 수준 높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거실에는 조선왕실의 향기가 담긴 ‘해상군선도’를 펼쳐놓는 것이 어떨까. 고종 황제와 독일인의 우정, 그리고 궁중의 수준 높은 격조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서재에는 ‘궁중책가도’가 제격이다. 예로부터 왕실이나 사대부 양반들은 책을 높이 숭상하고자, 혹은 자신의 지적 수준을 자랑하고자 책가도를 그려 서재에 펼쳐놓았다. 궁중에서 최고의 화원이 제작한 책가도는 채색과 필치가 뛰어나며 높은 격조를 뽐낸다. 서재에 앤디 워홀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책가도 하나면 게임 끝이다.
오쿠보 레나 & 이안 리남 Okubo Renna, Ian Lynam
아트 큐레이팅 그룹 코린티안스
우리는 사무실에 설치할 만한 꿈의 컬렉션을 즐거이 상상해보았다.(코린티안스는 도쿄에서 활동하는 예술 및 디자인 큐레이팅 팀이다.) 둘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너무 신이나서 엄청난 리스트가 작성되었지만, 지면상 세 개로 추려보겠다. 우선 시라나 샤바지의 사진 설치작품을 벽에 걸겠다. 시라나의 빈틈없는 예지력이 매일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길 바란다. 두 번째로는 오타케 신로의 작품. 2000년대 초반 잡지에 실린 오타케의 작업들은 이안을 그래픽 디자이너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시각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래픽 카논(2012년에 러스 킥이 편집한 유명한 만화 소설 문집)에 포함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상징적인 의미로 오타케 신로의 유리 케이스에 들어 있는 책 콜라주 작업을 가까이 두며 영감 받고 싶다. 마지막으로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했던 김을의 벽에 걸 수 있는 다섯개의 소품(드로잉, 페인팅, 콜라주)을 고르겠다. 각양각색의 그 작업들은 구성적으로도 인상적이었지만 날 것 그대로의 감정적인 힘이 엄청나게 느껴졌다. 작가에게 우리 공간에 어울릴 만한 작품 다섯 점을 직접 골라달라고 요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