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0주년, 엄정화가 엄정화 자신을 오마주하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Celebrity

데뷔 30주년, 엄정화가 엄정화 자신을 오마주하다.

우리를 기쁘게 하고, 때론 슬프게 하고 때론 놀라게 했던 그녀만의 무한한 스펙트럼으로.

BAZAAR BY BAZAAR 2022.07.25
 
2002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귀고리, 반지는 Stephen Webster.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02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귀고리, 반지는 Stephen Webster.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번 화보는 엄정화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며 특별히 빛났던 12가지 순간을 오마주한 작업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본인에게 남다른 촬영이었을 텐데요.
일단 〈바자〉에서 이런 특별한 화보를 기획해 감동적이었어요. 마치 〈바자〉와 저의 생일파티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예전 작업을 하나하나 다시 보면서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울컥하기도 했고 에너지도 얻었어요. 작업할 당시에는 힘들고 괴로운 순간도 많았는데 결국은 결과물이 남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면서 해온 작업들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참 좋구나. 더 고민하고 더 괴로워해도 되겠다. 앞으로 무얼 해볼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2020년 영화 〈오케이 마담〉 보디수트, 쇼츠, 사이하이부츠는 모두 Rick Owens. 선글라스는 MonclerxGentle Monster. 망사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20년 영화 〈오케이 마담〉 보디수트, 쇼츠, 사이하이부츠는 모두 Rick Owens. 선글라스는 MonclerxGentle Monster. 망사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했습니다. 영화 속 ‘혜진’은 가수와 배우를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이에요. 당시 신인 배우이자 ‘눈동자’라는 곡으로 가수를 준비하던 본인과 중첩되는 캐릭터였죠.
합창단에 있었고 노래를 부르는 건 저에게 익숙한 일이었지만 가수로 나 혼자 무대에 서는 건 거대한 사건이었죠. 그런데 심지어 영화까지 찍는다니. 최민수 선배님, 홍학표 선배님은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거든요. 겁이 없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유하 감독님을 만나서 “감독님, 저 시골에서 갓 올라왔어요. 압구정동을 잘 몰라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저 보고 압구정동에 가면 있을 것같이 생겼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웃음) 마침 노래도 할 수 있으니 혜진 역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캐스팅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끼워 맞추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운명적이었던 것 같아요.
 
2009년 영화 〈인사동 스캔들〉 퍼 재킷은 Valentino.

2009년 영화 〈인사동 스캔들〉 퍼 재킷은 Valentino.

당시 스무 살 엄정화는 가수로서, 배우로서 어떤 미래를 그렸나요?
모든 20대가 그런 것처럼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걸 해나가기 바빴죠. 늘 꾸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 미래까지는 그리지도 못했고 그저 막연하게 유명해지고 싶었죠.
영화 속에서 영훈이 “내가 보기에 혜진인 한국의 샤론 스톤이 될 거야”라고 하거든요. 혜진은 오히려 “난 있잖아요. 메릴 스트립 같은 연기파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죠. 혜진의 다짐이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신기한 게, 제가 롤모델로 꼽는 배우가 메릴 스트립이거든요. 어떤 작품에서도 존재감이 있는 배우, 작은 배역을 맡아도 커 보이는 배우. 자기의 배역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배우. 지금에 와서야 그런 꿈을 꿔요. 연기는 너무 괴로운데 또 그만큼 너무 좋아요.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지고 무거워져요. 30~40대에는 끊임없이 작품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한 발 뒤에서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 더 소중히 대하게 된달까요.
 
1998년 4집 앨범 〈초대〉 벨벳 보디수트, 팬츠, 장갑은 모두 Alaïa. 샌들 힐은 Michael Michael Kors.

1998년 4집 앨범 〈초대〉 벨벳 보디수트, 팬츠, 장갑은 모두 Alaïa. 샌들 힐은 Michael Michael Kors.

1998년 ‘초대’로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했어요. ‘배반의 장미’에서 번개 머리를 선보였다면 ‘초대’에선 긴 생머리에 부채를 드는 등 비주얼 콘셉트도 강화되었고요. 당시 한국에선 이렇게 확실한 콘셉트로 무대를 꾸미는 가수가 전무했잖아요. 어떻게 이런 시도가 가능했나요?
저는 무대에서 퍼포먼스 하는 걸 너무 너무 좋아하는 가수예요.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이 곡의 어떤 ‘이미지’를 듣는 사람에게 바로 각인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요. 연기를 같이 하다 보니까 배우로서의 내 모습과 철저히 분리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여러모로 어려서 용감했죠.(웃음) 남들이 안 해본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는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이게 더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1998년 4집 앨범 〈초대〉 드레스는 Off-White.

1998년 4집 앨범 〈초대〉 드레스는 Off-White.

1999년 앨범 〈몰라〉 작업 당시에는 이미 톱가수였어요. 그런데 김창환 작곡가에게 곡을 받으려고 2년 동안 삼고초려를 한다든가 무명 가수 김태영에게 찾아가 보컬 레슨을 받기도 했다죠.
태영 언니의 노래 스타일이 이 곡에 어울린다고 하는데 찾아가서 배워야죠. 제 성격이 그래요. 나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즐기기보단 항상 모자란 게 먼저 보여요. 그런 성격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친구들은 저한테 자신감을 좀 가지라고 걱정하지만요.(웃음)
2001년 〈화(花)〉를 준비하면서 깊은 슬럼프가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몰라’ 이후에 실연도 있었고 약간 에너지가 떨어져서 그랬는지 그 다음 앨범이 성과가 좋지 않았어요. 나이도 막 서른을 넘어가는 시점이었고. 만약 이 다음 앨범이 또 실패한다면 가수로서 존폐의 기로에 설 것 같았죠.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다행히 ‘다가라’라는 곡이 저를 다시 살려주었죠.
 
1993년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레더 재킷, 브라 톱, 브리프는 모두 Tod’s.

1993년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레더 재킷, 브라 톱, 브리프는 모두 Tod’s.

당시엔 이제 30대가 됐으니 댄스 말고 발라드 가수로 전향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있었다면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여전히 어린 나이인데.
웃기죠? 그때는 서른 넘는 댄스 가수가 없었어요. 여자가 서른 넘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였죠. 그런데 전 계속 댄스 가수 하고 싶었거든요. 너무 좋아서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난 춤을 출 수 있는데. 서른이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춤을 못 추게 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해버릴 거야’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2012년 영화 〈댄싱퀸〉 스팽글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12년 영화 〈댄싱퀸〉 스팽글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서울체크인〉에서 이효리 씨가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라고 물으니까 “몰라. 술 마셨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찡하더라고요. 외로웠나요?
살다 보면 ‘이게 끝일까?’ ‘이번이 마지막일까?’ ‘이럴 때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럴 때 선배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가면 되겠구나’ 하고 큰 힘을 얻거든요. 단 한 사람만 있어도요. 그런데 항상 제가 맨 앞에 있었거든요. 너무, 너무 외로웠어요. 항상 ‘나는 늙었다’ ‘난 나이가 많다’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고작 서른 몇 살에, 어린 나이에 이런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목소리가 나가고 나서 유독 안타까웠던 것 중에 하나는 더 이상 앨범을 낼 수 없다는 거였어요. 마흔이 넘어도 나는 계속 나아가야 하는데. 그게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일 텐데 그걸 못 하니까….  
 
2009년 영화 〈인사동 스캔들〉 언밸런스 전신 수트는 Alaïa. 펌프스는 Valentino Garavani.

2009년 영화 〈인사동 스캔들〉 언밸런스 전신 수트는 Alaïa. 펌프스는 Valentino Garavani.

2002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데뷔작 이후 10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영화였죠.
가수로서는 인기 절정이었지만 배우로서는 오랫동안 시나리오에 목말라 있었거든요. 그때 유하 감독님이 이 시나리오를 주셨죠. 저한테는 굉장한 모험이었어요. 수위 높은 장면들이 두렵긴 했어요. 사실 주변에서 많이 말렸거든요. 저는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대중의 인기를 얻고 사는 사람인데, 만약 잘못되면 그 모든 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유하 감독님을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흥미로웠어요. 결혼에 대해서, 여자에 대해서 지금의 내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거든요.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예요. 
 
2008년 미니 앨범 〈D.I.S.C.O〉 드레스, 스커트는 Dohye Yun. 브라 톱은 Jacquemus. 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08년 미니 앨범 〈D.I.S.C.O〉 드레스, 스커트는 Dohye Yun. 브라 톱은 Jacquemus. 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즘 세대에겐 시대를 앞서간 영화로 회자되더라고요.
결혼에 대해서 저도 그런 생각이었거든요. 왜 서른이 넘으면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거야? 왜 모든 사람이 맞춰놓은 시계처럼 때 되면 결혼하고 때 되면 애 낳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물론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지만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VIP 시사회로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그날 밤새도록 결혼에 대해서 떠들었던 기억이 나요.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동이 트도록 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한 단계 넘었구나’ ‘다행이다’.
 
2004년 8집 앨범 〈Self Control〉 컷아웃 보디수트는 Lacage.

2004년 8집 앨범 〈Self Control〉 컷아웃 보디수트는 Lacage.

2004년 〈Self Control〉은 달파란, 롤러코스터, 정재형 같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음악적 저변을 넓힌 앨범이었어요. 배우로 한창 주목받던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은 음악적 욕심이 있었나요?
배우로 자리를 잡고 작품을 해나가면서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가수는 안 할 거야’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당시에 느낀 건 생각보다 사람들이 절 그렇게 나이 든 여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확신이었어요.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난 언제든지 무대 위에서 섹시해질 수 있고 멋있어질 수 있다는.
 
2020년 영화 〈오케이 마담〉 레더 드레스는 Lacage. 장갑은 Rick Owens.

2020년 영화 〈오케이 마담〉 레더 드레스는 Lacage. 장갑은 Rick Owens.

마돈나도 1990대 후반 당대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작업하면서 엔터테이너에서 아티스트로 격상됐죠.
저도 마돈나를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화〉 이후에 한 번 더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죠. 아주 과감하게요.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실패했죠. 대중적으로는 완전히 전멸이었거든요. ‘Eternity’라는 곡으로 첫 무대에 올라갔는데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사실 준비할 때부터 회사에서 반대가 컸어요. 매니저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행사도 잘 다닐 수 있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곡은 놔두고 제가 자꾸 “아니야, 난 새로운 거 할 거야”라고 하니까.(웃음)
이 앨범이 있었기 때문에 2017년 〈Ending Credit〉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이 앨범을 만들면서 자아가 확고해진 것 같아요. 제가 비록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지만 다음 앨범의 방향을 정하고 프로듀서를 찾고 아티스트를 모으고. 이런 작업들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어요.
 
1993년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레더 재킷, 브라 톱, 브리프는 모두 Tod’s.

1993년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레더 재킷, 브라 톱, 브리프는 모두 Tod’s.

2008년 〈D.I.S.C.O.〉를 발매하면서 “지난 두 앨범 활동이 미비해 엄정화라는 가수가 없어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쉽게 기억하는 엄정화 쪽으로 생각했다”고 말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댄스 가수, 엔터테이너로서의 위상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가요?
〈Self Control〉 다음엔 조금 더 대중적인 걸 건드리고 싶더라고요. 테디를 만나서 그랬어요.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멋있는 곡을 갖고 싶다고요. 사실 ‘D.I.S.C.O.’는 듣기엔 쉽고 재밌지만 무대에 올리기 참 어려운 곡이에요. 하지만 그걸 채워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1999년 5집 앨범 〈몰라〉 드레스는 Paco Rabanne by Mue. 뮬은 Gianvito Rossi.

1999년 5집 앨범 〈몰라〉 드레스는 Paco Rabanne by Mue. 뮬은 Gianvito Rossi.

그해 연말 시상식에서 선보였던 레전드 무대도 큰 화제였어요. 무대라는 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침에 눈뜨면 어느새 무대 위에 서 있고. 십 몇 년은 그렇게 살았잖아요. 무대가 너무 익숙했는데 지금은 열 발자국, 아니 그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느낌이에요. 그런데도 언제든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고. 올라가고 싶고. 저에게 무대는 ‘꿈’이에요.
2012년 영화 〈댄싱퀸〉의 극중 이름은 ‘정화’죠. 이전까지는 배우와 가수의 정체성을 철저히 분리했다면 이 영화에서 그 빗장을 푼 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처음부터 두 가지로 시작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가수와 배우를 분리해서 활동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연기할 땐 배우, 무대할 땐 가수라고만 생각해요. 그런데 이 영화가 신기한 게, 처음 받아본 시나리오에서부터 두 인물의 이름이 황정민과 엄정화로 쓰여 있었어요. 실제로 황정민은 너무 황정민 같은 캐릭터였고 엄정화도 그랬죠. 나중에 극중 이름을 바꾸면 어색할 것 같아서 그대로 가게 되었어요. 가수 엄정화처럼 보일 것 같다는 걱정은 없었어요. 잘 되었다고 생각했죠. 춤을 출 수 있고 무대를 아니까 오히려 도움이 되었죠.
 
2001년 7집 앨범 〈화(花)〉 컷아웃 보디수트는 Rick Owens. 비즈 드레스는 Ganni.

2001년 7집 앨범 〈화(花)〉 컷아웃 보디수트는 Rick Owens. 비즈 드레스는 Ganni.

이 영화에서 “네 꿈만 꿈이고 내 꿈은 개똥이야?”라는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죠. 이 대사가 내포하듯 관객에게 개똥처럼 버려진 꿈을 다시 찾아내 도전하라고 말하는 영화잖아요.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괴로운데 즐거운 거 있잖아요. 슬픈데 좋은 거요. 오늘 화보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연기할 때 그런 열정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느껴요. 그리고 그런 제 자신이 좋아요. 이제 제발 좀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가 끝일 것 같아요. 배우로서 앞으로 만나볼 수 있는 인물이 무궁무진하잖아요. 지금처럼 열망이 넘치는 채로 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2013년 영화 〈몽타주〉 레더 드레스는 Valentino by Yoox.

2013년 영화 〈몽타주〉 레더 드레스는 Valentino by Yoox.

2020년 〈오케이 마담〉에선 원톱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돋보였어요. 이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올의 성향이 그렇기도 하고 당시 소셜미디어에는 엄정화표 여성 서사 액션물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가상 캐스팅 리스트가 돌아다닐 정도였죠.
제 영화 중에 〈싱글즈〉도 있잖아요. 지금 그걸 보면 참 어려요. 그렇게 어린데 서른 살이라고 고민하다니 얼마나 안타까워요. 거기 이런 대사가 나와요. “난 서른이 되면 모든 게 안정될 줄 알았어. 그런데 쥐뿔. 아무것도 없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서른이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너무 미리 나이를 먹었었구나. 그런 맥락에서 지금 제 나이 대 여자들의 다양한 인생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나오면 좋겠어요. 
 
2013년 영화 〈몽타주〉

2013년 영화 〈몽타주〉

언니로서 이제 겨우 서른인 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남들 시선에 자신의 인생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나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걸 두고 남들 눈치를 보면서 따라간 시간들은 인생의 낭비였더라고요. 좀 더 자신의 감을 믿으세요.
지금의 정화가 1993년의 정화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도 들리네요.
어휴, 안타깝다.(웃음) 격려해주고 싶어요. 그땐 어느 누구에게도 칭찬을 못 들었거든요.(웃음) 잘하고 있어, 잘할 거야.
엄정화는 ‘가보지 않은 발자국’ 같은 존재예요. 여전히 저 앞에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고요. 그렇게 계속 가다 보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별로 대단한 걸 기대하지는 않아요. 끝에는 늙은 엄정화가 있겠지만(웃음) 그래도 여전히 두 눈을 반짝이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반짝이는 눈으로 ‘와, 그거 재미있겠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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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장덕화
    스타일리스트/ 김석원
    헤어/ 조미연
    메이크업/ 정수연
    세트/ 이나경
    어시스턴트/ 김민주 박정용 백세리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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