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마지막 전통 부채, 지우산 장인을 만나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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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마지막 전통 부채, 지우산 장인을 만나다

부채는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지우산은 태양을 피해 그늘 아래로 바람을 부른다. 구례와 전주에서 만난 바람.

BAZAAR BY BAZAAR 2022.08.07
 
세상이 아무리 편리해졌다지만 실외의 더위는 이겨낼 재간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돼 해외로 퍼져나간 손풍기라는 아이디어 상품이 있지만 충전하는 걸 자주 잊어버려 정작 필요할 때 못 쓴 적이 많다. 에어컨과 선풍기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곳에서 어쩔 도리 없이 땀을 흘리다 부채와 양산을 꺼냈다. 신기하게도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부채가 집에 꼭 하나씩은 있다. 종이처럼 휘휘 휘어지는 광고용 부채는 바람이 인색하다. 일반 우산에 UV 처리를 더한, 양산이라고 부르기 뭣한 우산은 확실히 보호의 기능을 하지만 쨍쨍한 날 비를 피하려는 괴짜 같아 머쓱해졌다. 일상 속에서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고운 부채와 우산을 쓰던 때가 분명 있었다. 어느새 전통 방식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곳이 줄고 줄어 부채와 지우산을 만드는 곳이 딱 한 군데씩 남았다는 걸 알게 됐다. 홀로 남아 대나무를 벼리고 한지를 발라 말리는 작업을 하는 이들이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서 지체 없이 자신의 일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찌고 말려 특유의 색을 얻은 대나무.

찌고 말려 특유의 색을 얻은 대나무.

구례 죽호바람의 전통 부채
부채가 유명한 곳이라면 전주, 대나무가 유명한 곳은 담양. 조선시대 임금님이 선자청을 둬 부채를 만들었던 전주는 여전히 선자장이 모여 있는 고장이다. 대나무 얘기라면 조금 다르다. 부채는 바람을 내는 도구다. 바람이 잘 나려면 얇을수록 좋다. 그래야 팔랑팔랑 바람을 갖고 논다. 살을 가느다랗게 깎아도 탄성이 유지되려면 아주 강한 대나무를 써야 한다. 부채 만들기에 적합한 대나무가 자라는 곳은 지리산 인근이다. 녹음 위를 인장으로 지그시 누른 듯 산도 땅도 푸른 구례 분지에 유일하게 전통방식으로 부채를 만드는 ‘죽호바람’이 있다. 대표인 김주용 씨는 대나무밭과 뗄 수 없는 연으로 유일함을 지키는 중이다. “장인들은 봄, 여름에는 전주에서 부채를 만들고 가을에 농사일을 하고 겨울이 되면 지리산 지역에 와 대나무를 직접 사서 깎는 작업을 두세 달 동안 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 그 어르신들을 위한 하숙 업체를 하셨죠. 좋은 대나무밭을 소개하고 대나무 베어 오는 게 힘든 일이니까 일손도 도와드리고. 그러다가 7남 1녀이던 아버지 형제들이 대나무밭을 사서 분업화가 시작됐어요. ‘이제 겨울에 안 오셔도 괜찮아요. 저희가 하겠습니다’가 된 거죠. 나무를 베어 쪼개고 뜨고 살까지 놔서 전주로 올려 보내요. 거기에 한지를 바르고 모양을 오려 손잡이를 붙이면 완성됩니다. 제일 고된 작업을 여기서 다 한 거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하던 공정을 이제는 중국에 내줬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부채의 대부분이 이렇게 중국에서 온 재료에 한지만 붙인 것들이다. 부챗살과 자루를 깎아 한지를 붙여 만드는 전통부채 제작 과정을 손수 하는 곳은 죽호바람뿐이다. 작업을 하던 이들이 노쇠하고 수요가 없어지면서 전통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열악한 상황에도 부채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
 
합죽선용으로 쪼갠 대나무.

합죽선용으로 쪼갠 대나무.

그 답을 마을 어귀에 있는 대나무밭에서 찾았다. 3대째 이어져 내려온 3천 평의 대나무밭은 평생을 보낸 곳. 겨울에 잘라도 해가 바뀌면 어느새 키가 커져 무섭기도 기쁘기도 했던 애증의 장소다. “대나무 베는 일이 제일 힘든데요. 그럴 때 바닥에 누워 위를 올려다보면 대나무가 산들산들 움직여요. 그게 바람이죠. 대나무랑 바람이 마치 서로 이야기하고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바람을 맞고 자란 대나무가 제 손을 통해 부채가 돼서 다시 바람을 일으키다니 이것보다 멋진 일이 또 있을까요?” 그렇게 정성 들여 만드는 전통부채의 바람은 호쾌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큰 바람을 일으킨다. 종이와 나무지만 합성 재질 못지않다. 지리산 대나무의 튼튼함이란 이런 걸 말했나 보다. 견고하게 쭉쭉 뻗은 살이 믿음직스러운 건 물론 이쑤시개만큼 가느다란 대나무를 불에 그을려 모양을 뺀 부채는 또 아름답다.  
김주용 씨는 더운 여름 가벼운 에코 백에 슬며시 부채 하나를 넣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우리가 전통 부채로 알고 있는 평평하고 둥근 단선 부채를 변형해 네모난 부채를 만들거나 치마를 연상하게 하는 치마부채처럼 현대적인 디자인을 더해 부채를 만들고 있다. 옛 장인들이 농사를 짓던 가을이 되면 새로운 부채를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죽호바람의 부채에는 아직 명인도 장인도 아닌 부채장이가 사계절 모은 바람이 스며 있다.
 
자신을 부채장이라 소개한 김주용 대표.

자신을 부채장이라 소개한 김주용 대표.

부채의 모양을 잡는 철형.

부채의 모양을 잡는 철형.

살에 한지를 발라 말리는 과정.

살에 한지를 발라 말리는 과정.

촘촘하게 꿴 실은 윤규상 장인만의 시그너처다.

촘촘하게 꿴 실은 윤규상 장인만의 시그너처다.

전주 비꽃의 지우산
전주는 부채로 유명하지만 우산 수공업으로 이름을 알린 마을도 있다. 전주미래유산 11호로 지정된 ‘장재마을’은 오래전 지우산을 만들‘던’ 곳. 이제는 일반 주택가이며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남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5호 우산장, 윤규상 장인도 그 옛날 장재마을에서 수공예 우산 기술을 배웠다. 1957년 열일곱의 나이였다. 비닐이나 천이 나오기 전 사람들은 으레 종이로 만든 우산을 썼다. 꼭지와 살, 대가 쇠로 대체되고 종이가 천으로 변한 것뿐이다. 전국에서 사용하는 모든 지우산을 전주에서 만들던 시절에는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었다. 꼭지 같은 부속품은 전부 기계로 만들었다. 윤규상 장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술을 연마하고 돈을 모아 결과적으로 우산공장을 운영했다. 처음엔 지우산을 만들었고 비닐우산을 만들다 그것마저 사라지자 대나무로 뜨개바늘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살을 맞댄 대나무인지라 쉽게 놓지 못했다.
 
벽을 장식한 조각 우산.

벽을 장식한 조각 우산.

“어떤 날은 TV를 보는데 베트남이었던가? 지우산을 쓴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 거예요. 그것 참 예쁘다 했지요. 내가 전에 만들던 건데 하면서 다시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다시 지우산을 만들고자 했지만 우산 꼭지를 만들 기계 하나 없었다. 우산 살은 손으로 만들 수 있지만 꼭지를 만드는 데만큼은 기계의 정교함이 꼭 필요했다. 윤규상 장인은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기계를 설계했다. 대칼이나 옥자구 외에 필요한 도구들도 직접 손에 맞게 개조하고 대장간에 맡겨 하나밖에 없는 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대나무를 쪼개 우산 꼭지에 끼우고 실을 엮은 다음 한지를 바른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과정 하나하나 분업했던 일이다. 더군다나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 틀어지지 않는 정교한 우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나무가 원형 그대로일 때부터 표시를 해둔다. 1번 살, 2번 살, 칼집을 넣은 순서대로 엮는다. 살 개수가 많아야 보기에도 아름답고 튼튼한데 그러려면 다 장인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80번이나 1백 번이나. 장인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나하나 완성한다.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내는 작업 중인 윤규상 장인.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내는 작업 중인 윤규상 장인.

이렇게 정성으로 만든 지우산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고 있을지 궁금함이 앞섰다. 지우산의 원래 쓰임은 비를 피하는 것. 한지 위에 들기름을 발라 말리면 색이 은은하게 배고 방수 효과가 생긴다. 물과 기름이 앙숙인 그 간단한 원리다. 비는 기름을 만나 또르르 구르거나 튕겨나간다. 바람에도 강해 뒤집어지는 일도 없다. 비 오는 날 지우산을 받는(장인은 우산을 쓴다고 하지 않고 받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이 일에 뛰어들었지만 요즘엔 오히려 다른 쓸모로 알려지고 있다.
 
순서대로 연결해놓은 살.

순서대로 연결해놓은 살.

서울의 편집숍인 챕터원에서도 볼 수 있는 지우산 파라솔은 해를 피하고 바람을 부르는 용도로 쓰인다. 풍경의 색을 한 단계 낮추는 그늘이 아니라 한지를 통해 한 번 걸러진 은은한 빛이 온통 쏟아진다. 지름 2미터, 살만 1백 개에 가까운 파라솔은 과감하게 펼쳐진 모습으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살에 촘촘하게 구멍을 뚫어 그 사이사이를 실로 이은 것 역시 윤규상 장인의 시그너처다. 따로 기능하는 것 없이 그저 심미적인 이유다. 검은 대나무를 좋은 놈으로 골라내 오죽(烏竹) 손잡이도 만들어보고 우산을 반으로 잘라 벽에 걸어 감상하게 만든 조각 우산이라는 것도 개발했다. 몇 년 전부터 일을 물려받기 위해 장인의 곁에서 함께하는 아들 윤성호 씨의 노력이다. “내가 너무 고지식했어요. 그래서 대나무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왔네요. 도무지 손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마지막이라는 의무보다 못내 좋아서 하는 아버지의 일을 여기서 끝내지 않으려는 아들의 마음. 비가 오나 해가 내리나 어떤 날이든 꽃처럼 활짝 펴진 모습의 지우산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색색의 한지를 바른 지우산.

색색의 한지를 바른 지우산.

여러 크기의 우산 꼭지.

여러 크기의 우산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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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박의령
    사진/ 김연제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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