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의 선자, 김민하의 '진짜' 얼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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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의 선자, 김민하의 '진짜' 얼굴

백조의 빛과 흑조의 어둠을 한순간에 끌어안다. 자신을 둘러싼 시간을 책임감 있게 감당하고 잘 흘려보낼 줄 아는 배우, 김민하.

BAZAAR BY BAZAAR 2022.09.23
 
왼팔에 착용한 ‘부케 스트라스’ 팔찌는 70만원, 오른팔에 착용한 ‘펄 캣’ 팔찌는 63만원, ‘벨 비비에’ 슬링백 슈즈는 가격 미정 모두 Roger Vivier. 드레스는 Soonil.

왼팔에 착용한 ‘부케 스트라스’ 팔찌는 70만원, 오른팔에 착용한 ‘펄 캣’ 팔찌는 63만원, ‘벨 비비에’ 슬링백 슈즈는 가격 미정 모두 Roger Vivier. 드레스는 Soonil.

백조의 밝음과 흑조의 어둠, 본인에게 더 가까운 성질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나요?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가지 면이 공존하잖아요. 제게도 티 없이 밝은 면이 있죠. 그래도 제 본연에 좀 더 가까운 쪽은 어둠이라고 생각해요. 내면의 어둠을 탐구하거나 혼자만의 생각에 깊게 파고드는 면이 있어요.
연기를 시작하면서 발달한 면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기질일까요?
어릴 때부터 공허함, 외로움 같은 감정을 또래보다 예민하게 감각했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기분을 자주 느끼는 어린이였겠네요.
“너는 왜 그래?” “그런 게 왜 궁금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께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사람들은 왜 죽음을 무서워하고 슬퍼하는 거야? 세상의 모든 건 언젠가는 사라지는데 왜 그걸 아쉬워하는 거야?
 
브로치로 연출한 ‘부케 스트라스’ 헤어핀은 87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Kimhekim.

브로치로 연출한 ‘부케 스트라스’ 헤어핀은 87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Kimhekim.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들었나요?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셨죠.(웃음) “엄마 아빠가 죽으면 안 슬플 것 같아?”라고 되물으시기에 “슬픈 건 당연한데 왜 좌절까지 하느냔 말이지”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어요. 어린 나이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스스로 신기하게 느껴져요. 돌이켜보면 저는 그때 슬픔과 좌절이 확실하게 다르다고 인식했나 봐요. 아끼는 인형이 사라진다면 슬프긴 하겠지만, 그 일로 제가 좌절하진 않을 것 같았거든요. 오히려 지금은 구분이 잘 안 되지만요.
〈파친코〉 얘기를 해볼까요. 전 세계에 배우 김민하의 이름과 얼굴을 알린 작품입니다. 이 정도의 대작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공개 직후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실감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론 저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했죠. 오늘처럼 화보와 인터뷰를 소화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예전보다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차기작을 진중하게 논의하기도 하죠. 그런데 실감은 지금도 안 나요. 더 정확하게는 무엇을 실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죠. 작품 공개 이후의 시간들을 잘 감당해왔다고 생각하나요?
그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그때 이렇게 할걸’이라는 후회는 없어요. 잘 흘려보냈다고 생각해요.
원래 지나간 일에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편인가요?
네. 그래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후회하고 미련을 남긴다는 게 저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에요. 〈파친코〉 프로모션 기간에도 최선을 다하자는 게 목표였어요.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언어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을 총동원해서 이 진주알 같은 이야기를 잘 알리자, 후회 없이 전달하자.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상상한 각자의 선자가 있었겠지만, 시리즈가 소개된 이후에는 모두가 젊은 시절의 선자 캐릭터에 배우 김민하를 대입해서 떠올리겠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의 얼굴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작품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다는 사실 자체보다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방법을 고민하는 게 제겐 더 중요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잘 대변해야 하는데’ ‘이걸 망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컸죠. 작품 속 시대를 직접 겪으신 제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듣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됐어요. 한순간도 대충 하거나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졌죠.
 
오간자 소재의 ‘비브 쇼크 주얼’ 미니 백은 Roger Vivier. 드레스는 Minju Kim.

오간자 소재의 ‘비브 쇼크 주얼’ 미니 백은 Roger Vivier. 드레스는 Minju Kim.

“네가 선자를 연기하는 게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슬프다”라고 하셨다죠. 작품을 보신 뒤에는 어떤 말을 해주셨나요?
전화로 “민하야, 잘 봤어. 난 너를 누구보다 제일 많이 사랑해”라고 하셨어요.
지금 〈파친코〉와 선자를 돌아보면, 이전보다 더 또렷해지는 점이 있나요?
기억이 희미해져서 두 달쯤 전에 책을 다시 읽었어요. 신기하게 좋아하는 장면과 구절이 매번 달라져요. 동시에 점점 더 확실하게 느끼는 건, 선자는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스스로 중심을 잡기 힘들어지는 상황일수록 일부만을 보기 쉽죠. 그 일부가 전체라고 믿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선자는 순간에서 빨리 빠져나와서 전체를 보더라고요.
 
‘비브 쇼크 스트라스 버클’ 펌프스는 2백67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Kimhekim.

‘비브 쇼크 스트라스 버클’ 펌프스는 2백67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Kimhekim.

책에서도 시리즈에서도, 저 역시 인상적으로 보이는 장면이 매번 달라요. 하지만 선자가 우동집에서 이삭(노상현)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볼 때마다 좋아해요. 불안과 다짐이 뒤섞인, 아주 묘한 감정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촬영하던 때의 기억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이삭이 “그 사람 잊을 수 있느냐”고 물을 때 담담하게 그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선자를 상상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이삭의 대사를 듣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쏟아지면서,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일본에 함께 가겠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질 않더라고요. 선자가 한수(이민호)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 그때 온전히 알 것 같았어요.
 
‘큐브 스트라스’ 샌들 힐은 Roger Vivier. 드레스는 Dew E Dew E.

‘큐브 스트라스’ 샌들 힐은 Roger Vivier. 드레스는 Dew E Dew E.

〈파친코〉는 역사와 그 안의 사람들을 진중하게 다루면서도, 그들 각자에게 짐 지워진 무게와 고통의 강박에서 가뿐하게 벗어날 줄도 안다는 점에서 멋진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인물들이 즐겁게 춤을 추며 등장하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가 대표적이죠.
실제로 현장에서 사람들과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기쁨이 무엇이었을까?”였어요. 그 질문을 생각해보는 것이 저에겐 정말 중요했고, 말씀하신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로서 시청자들에게 말을 거는 기분이었어요. 선자에게는 그 기쁨이 가족이었다고. 
 
‘아이 러브 비비에’ 슬링백 슈즈는 1백16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Jaden Cho.

‘아이 러브 비비에’ 슬링백 슈즈는 1백16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Jaden Cho.

〈파친코〉 관련 해외 인터뷰 영상들을 보면 ‘책임감(responsibility)’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쓰더군요. 왜였을까요?
그것 역시 아마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 때문이었을 거예요. 전 늘 연기할 때마다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가지는 편이에요. 스스로를 배우라기보다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요. 공감이든, 위로이든, 어떤 식으로든 보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단 한순간도 저를 뽐내려고 연기한 적은 없어요.
 
‘트레 비비에 메탈 버클’ 모자는 98만원, ‘비브 고 틱 메탈 버클’ 부티는 2백32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Lee Y. Lee Y.

‘트레 비비에 메탈 버클’ 모자는 98만원, ‘비브 고 틱 메탈 버클’ 부티는 2백32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Lee Y. Lee Y.

‘내 메시지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깊이 가닿았구나’를 크게 실감한 순간이 있나요?
지난봄에 〈파친코〉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때 관객들의 감상을 들으며 크게 감동받았어요. 작품에서 큰 힘을 얻었고, 부모님 세대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는 말들이 정말 뭉클하고 기쁘게 다가왔죠.
〈파친코〉의 서문에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라고 적혀 있죠. 김민하에게 ‘~지만 그래도 상관없는’ 것은 뭔가요?
잘못해도, 울어도, 괜찮지 않아도 상관없다. 저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고, 제가 그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주저앉기 직전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그런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부케 스트라스 버클’ 마이크로 백은 1백77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Push Button.

‘부케 스트라스 버클’ 마이크로 백은 1백77만원 Roger Vivier. 드레스는 Push Button.

말의 힘을 믿나요?
네, 엄청나게요.
배우의 말은 작품 바깥에서도 기록되죠. 오늘 인터뷰 역시 그럴 테고요. ‘기록되는 사람’이라는 점으로부터는 자유로운가요?
비단 기록으로 남지 않더라도 저는 제가 하는 모든 말에 책임감을 크게 느껴요. 말하기 전에 엄청나게 생각해 보는 타입이죠. 어릴 때부터 혼자 메모하고 글을 쓰는 데 익숙하기도 하고요. 말은 기록하지 않으면 공중에 흩어져버리는 속성을 가졌지만, 그 와중에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아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연기와 비교해 어떤 즐거움이나 필요를 느끼나요?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건 내 뮤직비디오 중 하나의 순간이야’라고 자주 상상했고요. 한 곡을 듣는 시간은 고작 3~4분이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이건 가짜야, 진짜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잠시라도 현실에서 빠져나가는 도피처가 되더라고요.
 
드레스는 Push Bu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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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혼자 감정을 단련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네요.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지키려는 사람의 고집이기도 하겠죠.
살면서 느끼는 게 너무 많아서 주체가 안 되고, 그래서 힘들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실제로 고집 세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저와 선자의 비슷한 면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양심에서 벗어나는 일을 했을 때 감당하기 어려워하죠. 그래서 본질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지켜가는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도 많이 받아요. 하지만 저와 다른 가치관을 수용하는 데는 유연한 편이에요.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연기와 음악 외에도 평소 영감을 얻는 분야가 있나요?
사람들 구경요. 관찰하고, 대화를 나눌 때가 좋아요.
오늘 이 인터뷰 시간은 어떻게 관찰하고 있나요?
통찰력 있는 자리요.(웃음)  
 
‘비브 쇼크 스트라스 버클’ 벨트는 1백51만원, ‘트레 비비에 메탈 버클’ 부티는 1백96만원 Roger Vivier. 브이넥 드레스는 Push Button.

‘비브 쇼크 스트라스 버클’ 벨트는 1백51만원, ‘트레 비비에 메탈 버클’ 부티는 1백96만원 Roger Vivier. 브이넥 드레스는 Push Button.

※가격이 표기되지 않은 제품은 모두 가격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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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서동범
    글/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사진/ 조기석
    헤어/ 장혜연
    메이크업/ 황희정
    스타일리스트/ 박세준
    세트 스타일리스트/ 전민규
    어시스턴트/ 정민호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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