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와 정도련이 예술에서 믿는 것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양혜규와 정도련이 예술에서 믿는 것

양혜규의 새로운 조각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이 홍콩 M+ 뮤지엄 한가운데 매달려 있다. 전래동화 ‘해와 달’의 오누이가 그토록 꿈꾸던 구원일까. ‘잭과 콩나무’의 잭이 거꾸로 거슬러 오르며 열망하던 미지의 세계로 가는 통로일까.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허물을 벗은 뱀처럼 움직이는 동아줄이 공명의 공명의 공명을 거듭하면 그 순간 내 앞에 놓인 존재가 오직 예술뿐임을 깨닫는다.

BAZAAR BY BAZAAR 2022.09.26
 
M+는 홍콩이 세계 문화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15년간 준비 끝에 문을 연 아시아 최대 시각문화 박물관이다. 헤르조그 앤 드뫼롱이 설계한 건물 중앙 로비 공간에 양혜규의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Sonic Rescue Ropes)〉 9점이 하나의 설치로 공간과 호응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광택나는 금속 방울을 6각 혹은 12각 등 기하학적 단면 구조로 엮은 이 유동적인 조각은, 7m에서 20m까지 높이가 다른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드리워 있다. 양혜규에게 개관 커미션을 의뢰한 M+ 부관장 정도련은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을 보고 그의 조각이 재료의 순수성으로 회기했음을 발견했다. “조각의 프레임이 인체의 뼈대라면 이번 동아줄은 뼈대에서 연골로의 진화이며 재료의 물성은 순수한 선에 다다른다.” 오랜만에 홍콩에서 재회한 양혜규와 정도련의 테이블에 〈바자〉가 합석했다. 십수 년간 예술적 동지로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서 양혜규의 예술세계를 여는 주관적 진실의 열쇠를 획득했다.
 
나에게 ‘주관적 진실’은 ‘관련성을 담보한 정확성(relevant precision)’이다. 나 혼자 꽂혀서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와 상관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정의하는 미술이자 내가 믿는 어떤 주관적 진실이다. - 양혜규
 
1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 2021-2022, 검정색 스테인리스강 방울, PVD 도금된 스테인리스강 방울, 스테인리스강 체인, 분할 링, 가변 크기, 작가 제공, M+ 커미션, 2022.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1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 2021-2022, 검정색 스테인리스강 방울, PVD 도금된 스테인리스강 방울, 스테인리스강 체인, 분할 링, 가변 크기, 작가 제공, M+ 커미션, 2022.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Sonic Rescue Ropes)〉1은 금속 방울을 6각 혹은 12각 등 기하학적 구조로 엮은 유동적인 조각이다. 방울로 제작된 〈소리 나는 조각〉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손으로 회전시켜 소리를 내는 벽걸이형 초기 작품이 있었고, 이후 손잡이를 매개로 함께 춤추는 〈소리 나는 춤(Sonic Dance)〉2 등의 직립형 조각들, 그리고 몸에 직접 착용하는 〈소리 나는 의류(Sonic Wears)〉3를 거쳐 최근에는 〈소리 나는 동아줄(Sonic Ropes)〉 등으로 진화했다.
양혜규: 동아줄이라는 형태를 처음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에서 시도했고, 이후 2년 동안의 발전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결과가 이번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 작품이다. 사실 〈소리 나는 조각〉은 메탈 프레임에 얹혀진 망에 방울을 부착한 형태이다 보니 딱딱한 조각에 가깝긴 하지만, 활성화되면 소리도 나고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툭 치면 움직이는 블라인드 역시 온전히 딱딱한 조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소리 나는 의류〉와 〈소리 나는 동아줄〉, 이 두 가지 조각이 블라인드 설치작과 가장 근접한 형태로 진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중력에 관한 문제, 즉 벽에 걸린 형태인지, 공중에 매달린 형태인지, 서 있는 형태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했다면, 이번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 작업을 통해 〈소리 나는 조각〉과 블라인드 설치작 사이의 관계를 고찰했다. 이를테면 베를린의 바바라 빈 갤러리에 전시한 〈소리 나는 수호물(Sonic Guard)〉4역시 마치 보자기처럼 매우 유동적인 성질을 가진다. 방울을 금속 링으로 결합해서 직조하듯 제작된 조각은 의례를 위한 오브제를 덮는다. 조각의 유동성이란 조각가에게 매우 흥미로운 지점인데, 특히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의 운송을 준비하면서 유동성에 대해 크게 실감했다. 허물을 벗는 뱀과 같은 동아줄을 위로 들어 올리면 그제서야 마치 쏟아지는 별자리같이 6각형, 12각형의 온전한 형태가 드러난다. 정도련: 나는 〈소리 나는 조각〉의 시작점이 초기 직립형 작품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본다. 2012년에 양혜규 작가와 인도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미 방울에 꽂혀 계셨다. 남서부 케랄라의 코친이라는 도시에서도 방울은 종교적인 맥락의 사물이다. 양혜규 작가가 현지 큐레이터와 어떻게 놋쇠 방울을 구할 수 있는지 문의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방울은 그 다음 해에 스트라스부르의 오베트1928에서 열린 개인전 «동음이의어들의 가계(Family of Equivocations)»에 출현했다. 〈소리 나는 조각〉의 시작점을 돌아볼 때,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은 재료의 순수성으로의 회기를 보여준다. 조각의 프레임이 인체의 뼈대라면 이번 동아줄은 뼈대에서 연골로의 진화를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재료의 물성은 순수한 선에 다다른다.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은 방울이라는 소리 내는 사물의 정수를 보여준다. 조각이 활성화되면 방울 소리가 미술관 전체를 가득 채우는데,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다 보니 소리가 공명하면서 가중된다.
〈은색 육각 경량/중량〉 동아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에 세 번(12시, 3시, 5시), 전체 10점의 동아줄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15분 미술관 직원에 의해 활성화된다. 방울 소리가 미술관 전체를 가득 채우면, 각기 다른 공간에 있던 관람객이 소리의 근원을 찾아 작품 주변으로 모여드는데, 그 광경 자체가 장관이다.
양혜규: 오늘 잠시나마 활성화 광경을 목격했다. 그 순간에는 양혜규도 정도련도 M+도 중요하지 않고 오직 작품과 관람객의 조우만 존재하더라.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은 미술관 건물 정중심에 있는 세 개 층에 달하는 높이의 빈 공간에 설치되었다. 왜 이 공간이어야 했나?
정도련: 우리는 이 공간을 빛의 우물(lightwell)이라 부른다. 보이드(void)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를 대체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지상층 가운데에 자리한 거대한 비정형적 사각 구멍은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의 천장까지 수직으로 이어지고 그 높이가 20미터가 넘는다. 빈 공간이지만 사실은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이다. 양혜규 작가에게 조각이란 바닥에 서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천장에 매달릴 수도 있는 것이며, 그의 작업은 투명성과 비투명성을 관통해왔다. 당연히 이 공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양혜규: 자아비판적으로 돌아보자면 여태까지 공간을 밀도 높게 채우는 방식으로만 작업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어마어마한 빈 공간을 라인 몇 개로 해결하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조차도 과연 이게 말이 되는 건지 반신반의했다. 세 개 층에 걸친 공간이 완전히 비정형인 데다가 시선을 둘 곳이 너무 많아서 제어불능 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오히려 내가 정도련 부관장에게 물었다. 나한테 이렇게 중요한 공간을 맡긴 이유가 무엇이냐고. 거기서 파생된 키워드가 ‘유라시아’였다. 다만 유라시아의 개념을 서양과 동양,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지정학적 궤적으로만 보면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적 해석으로 귀결되곤 한다. 우리는 구체적인 지리학적 장소, 즉 양끝을 잘라내고 중간을 보기로 했다. 개관 후 작업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아, 이게 말이 되는 아이디어였구나’ 싶더라. 좋게 말하면 거시적 문맥적으로도 공을 엄청 들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우리 둘 다 엄청나게 걱정했다. 과정을 다 얘기하자면 이 인터뷰 제목이 ‘산전수전’이 될 수도 있다.(웃음)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 2021-2022, 검정색 스테인리스강 방울, PVD 도금된 스테인리스강 방울, 니켈 도금된 방울, 스테인리스강 체인, 분할 링, 가변 크기, M+ 소장, M+ 커미션, 2021-2022.«M+ 커미션: 양혜규» 전시 전경, M+, 홍콩, 2022. 사진: Lok Cheng. M+, Hongkong.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 2021-2022, 검정색 스테인리스강 방울, PVD 도금된 스테인리스강 방울, 니켈 도금된 방울, 스테인리스강 체인, 분할 링, 가변 크기, M+ 소장, M+ 커미션, 2021-2022.«M+ 커미션: 양혜규» 전시 전경, M+, 홍콩, 2022. 사진: Lok Cheng. M+, Hongkong.

M+는 홍콩 정부가 ‘아시아의 미술 허브’를 만들기 위해 15년에 걸쳐 야심차게 만든 글로벌 미술관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관련한 격리 조건으로 아직 문호를 다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쉽다.
양혜규: 원래 홍콩에 대한 애정이 많고, 많은 미술계 동료와 친구들이 살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여전히 국가주의에 경도된 나라가 많아서 홍콩만큼 미술인들이 두루 섞이기 좋은 곳도 흔치 않다. 그런데 한동안은 방문할 수도 없고, 홍콩 특유의 아시아 미술인 간의 교류도 뜸해서 못내 아쉬웠다. 따라서 M+라는 세계적인 기관이 앞으로 어떤 네트워크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도련: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랜드 오프닝 때 국제적인 미술 전문가들, 관광객들이 방문했을 것이고 일차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관심이 쏠려 오히려 홍콩 시민을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했을 것이다. 개관 후 7개월 동안 1백3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7백30만 명의 홍콩 인구 중 20%에 달하는, 실로 엄청난 숫자다. 글로벌 미술관이지만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먼저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장점이었다.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올해 말, 내년 초엔 격리 조건이 없어져 국경이 완전히 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국경의 폐쇄로 인한 미술계의 트라우마가 아예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려는 느낌이다. 아시아 사정을 잘 모르는 서구적 시각에서 “홍콩은 끝났고, 이제 서울로 가자”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 미술 허브가 꼭 도시일 필요는 없지 않나. M+ 같은 기관은 아시아 내에서 홍콩이라는 맥락과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조건 때문에 홍콩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서울과 홍콩이 함께 ‘격’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라는 지역에 다수의 문화 허브가 존재한다면 오히려 서로에게 고무적이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를 두고 ‘한국적 정서’를 말하는 관람객이 많았다. 특히 〈소리 나는 동아줄〉은 한국의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연상된다는 의견이 많았고, 이번 〈소리 나는 구명 동아줄〉과 관련해서 작가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직접적으로 밝혔다.
양혜규: 사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MMCA 전시 때도 이미 참조로 언급된 바 있었다. 다만 “한국적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무언가가 뚝 떨어져 사람을 위기에서 구하는 서사는 전 세계 어디에나 편재한다. 동아줄이 아니라 머리채를 내리기도 하고 ‘잭과 콩나무’처럼 반대로 하늘로 올라가기도 한다. 아랍 사람들 역시 이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더라.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관람객의 몫이란 게 있다. 한국성이니 보편성이니, 내가 쉽게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이 설화가 담보하고 있는 보편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작업과 연결 지을 수 있었다.
 
2 〈소리 나는 놋쇠 춤〉, 2013. 분체도장 강철 프레임, 분체도장 격자망, 바퀴, 놋쇠 도금된 방울, 분할 링, 180x86x86cm, EMI, 개인 소장. «타원과 원» 전시 전경, 샹탈 크루젤 갤러리, 파리, 프랑스, 2013. 사진: 플로리안 클라이네펜.

2 〈소리 나는 놋쇠 춤〉, 2013. 분체도장 강철 프레임, 분체도장 격자망, 바퀴, 놋쇠 도금된 방울, 분할 링, 180x86x86cm, EMI, 개인 소장. «타원과 원» 전시 전경, 샹탈 크루젤 갤러리, 파리, 프랑스, 2013. 사진: 플로리안 클라이네펜.

두 분은 2004년 부산비엔날레에서의 첫 만남 이후 지금까지 예술적 우정으로 지속되는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에게 놀란 점이 있나?
양혜규: 나는 스스로 ‘아직도 화가 많구나’ ‘일하기 쉬운 작가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결과물은 쿨하지만, 산전수전이 많았던 과정에서 나는 불독처럼 끈질길 수밖에 없었다. 삐뚤게 보면 작품에 대한 내 끈질김이 비호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면 정도련 부관장은 예측가능한 사람이다. 특히 요즘같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서, 왔다리갔다리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예측가능하다는 건 큰 장점이고 예의이다. ‘내가 저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왜 갑자기 저런 행동을 할까? 저 뜬금없는 결정은 뭘까?’ 내 마음을 한없이 철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측가능하다는 건 연속성이자 지속성이고 다른 말로는 신뢰이다. 정도련: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새삼 상기한 사실인데, 양혜규 작가는 ‘기관’을 중시한다. 양혜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단순히 전시를 개최하는 데 급급하거나 경력의 기회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양혜규는 기관의 역할은 물론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맥락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작가이다. 양혜규: 지난 일이라서 하는 말이지만, 이번 커미션은 하나의 기관이 태어나는 과정이 내 몸 안으로 고스란히 전이된 경험이었다. 내가 자식이 있었다면 자자손손 대대로 들려줄 얘기다.
 
3 〈소리 나는 의류 – 니켈 도금 판초〉, 2013, 니켈 도금된 방울, 분할 링, 82x60cm, 8.95 kg. 샹탈 크루젤 갤러리 제공, 파리.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3 〈소리 나는 의류 – 니켈 도금 판초〉, 2013, 니켈 도금된 방울, 분할 링, 82x60cm, 8.95 kg. 샹탈 크루젤 갤러리 제공, 파리.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정도련 부관장은 〈양혜규를 위한 소사전〉 〈(HY를 위한) 약간 큰 소사전〉 〈양혜규 사전을 향한 세 번째 시도〉5까지 세 권의 소사전을 집필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발견한, 다음 소사전에 새롭게 추가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나?
정도련: 첫 번째 사전이 2007년, 두 번째가 2013년, 세 번째가 2020년에 나왔다. 각각 6~7년의 공백이 있다. 여러 가지 키워드가 머릿속을 떠돌아다니지만 역시 3~4년은 더 기다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형식에 관해 말하자면, 첫 번째는 리스트, 두 번째는 챕터, 세 번째는 섹션이었다. 특히 세 번째 소사전에서는 ‘매핑’이 중요한 개념이었다. 재료, 형태, 기법, 전시 장소, 참고물을 마치 3차원의 공간처럼 지도로 표현했다. 여기서 차원이란 글쓰기의 형식뿐만 아니라 생각의 진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음엔 4차원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닐까.(웃음) 너무 큰 야심인가.
 
4 〈의례진에 걸친 소리 나는 수호물 – 청〉, 2022, PVD 도금된 스테인리스강 방울, 분할링, 선택 가능 재료: 제기, 인조 사과, 인조 배, 인조 감, 인조 말린 대추, 양초, 향 받침대, 모래, 가변크기. «황홀망恍惚網 – 종이 비상飛上과 소리 나는 수호물» 전시 전경, 바바라 빈 갤러리, 베를린, 독일, 2022. 사진: 닉 애시.

4 〈의례진에 걸친 소리 나는 수호물 – 청〉, 2022, PVD 도금된 스테인리스강 방울, 분할링, 선택 가능 재료: 제기, 인조 사과, 인조 배, 인조 감, 인조 말린 대추, 양초, 향 받침대, 모래, 가변크기. «황홀망恍惚網 – 종이 비상飛上과 소리 나는 수호물» 전시 전경, 바바라 빈 갤러리, 베를린, 독일, 2022. 사진: 닉 애시.

이번 커미션 외에도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위트레흐트 편(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 ‐ Version Utrecht)〉6을 비롯한 9점의 작품이 M+ 컬렉션에 속해 있다. 소장 기준으로 삼은 가치는 무엇인가?
정도련: 아시아를 중심으로 글로벌한 시각문화를 다루는 컬렉션이라는 맥락에서, 그리고 양혜규라는 작가가 동시대 특히 아시아 출신 작가로서 차지하는 중요도를 고려해볼 때, 초창기를 마감하고 성장기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작품은 당연히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위트레흐트 편〉이다. 2006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뒤 사실 폐기되었던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블라인드 룸(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 ‐ Blind Room)〉은 내가 워커아트센터에 근무하던 당시 나의 제안으로 재제작 후 전시되었고, 2007년 워커아트센터가 소장을 결정했다. 〈블라인드 룸〉의 재제작 당시에도 항상 〈위트레흐트편〉으로 이야기가 소급되곤 했다. 그만큼 양혜규 작가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처음으로 감각 장치와 결합된 블라인드 설치작인 데다 그 후로 작업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다행히도 아직 다른 곳에 컬렉션되지 않은 상태라서 소장할 수 있었다. 양혜규: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미술관과 비교해서 M+는 결과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정도련: 소장품에는 큐레이터의 연구와 지식만큼 기회도 중요하다. 미술사적으로 아무리 유의미한 작품이라고 해도 어떤 이유에서든 소장 가능성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거니까. 소장품이란 예산이 있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우연과 필연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것 같다. 양혜규: 작가를 잘 알면 그의 중요 작업을 빨리 포착할 수 있고, 그만큼 먼저 소장할 수 있다. 정도련: 그렇다. M+가 두 번째로 소장한 작품이 2012년 테이트모던 탱크가 개관했을 때 선보인 2012년작 〈의상 동차(動車 Dress Vehicle)〉7이다. 아까 언급한 대로 방울에 대한 작가의 집착도 인도여행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고, 처음으로 양혜규 조각의 행위성에 대중적인 주목이 집중된 작품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컬렉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쩌면 〈건축 자재상 콜라주(Hardware Store Collage)〉8와 같은 평면 작업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미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 연작을 시작했던 당시 아직 학생이었던 양혜규의 초기 작업 특유의 레디메이드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유머 모두가 드러나는 연작이다. 우연하게도 작가의 파리 전속 갤러리가 아트바젤 홍콩에 출품했던 〈건축 자재상 콜라주〉 몇 점을 보는 순간, 면면히 이어져 오는 그 특유의 감성을 포착하였기에 소장하게 되었다. 양혜규: 보통 소장을 고려할 때 흔히들 양혜규라고 하면 머릿속에 딱 그려지는 어떤 것, 즉 전형성을 요구한다. 지금 언급한 M+의 소장품들은 작가의 일대기에 잘 들어맞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놀랍게도 많은 미술관이 여전히 그 전형성을 요구한다. 아시아 작가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일단 이들을 심화 소장(in-depth collection)의 대상으로 삼는 미술관 자체가 희박하다. 아무리 예전에 비해 국경을 초월한 탈국가주의적인 사고가 널리 퍼졌다고 해도 아직 문화 패권주의가 여전히 크게 작용하는 현실에서 ‘태생’을 뛰어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막말로 아시아 작가에 관해서는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조차 전형적인 작품을 한점 소장하는 걸로 쉽게 만족해버린다. 그러면, 작가는 그 한 가지 작업의 이미지로 고착되고 만다. 작품의 맥락이 생성되지 않고 하나의 오브제로만 정의되어버린다. 한국의 어떤 공공 미술관도 어떤 작가군을 심화 소장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자신들만의 서사를 만들기가 결코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더구나 생존하는 작가에게는 그 기회가 더더욱 주어지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M+가 어떤 작가와 어떤 서사를 써내려 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초점도 다르고 야심도 다르다. 개인적으론 서구 미술관과는 달랐으면 한다.
 
5 〈양혜규: 공기와 물 – 양혜규에 관한 글 모음〉, 2001-2020, 엮은이: 김수기, 양혜규, 이지회, 디자인: 정진열, 출판: 국립현대미술관, 현실문화연구, 서울, 2020, 24.5x17x5cm, 616 페이지, 하드커버. ISBN 978-89-6564-258-9.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비디오: 양혜규 스튜디오.

5 〈양혜규: 공기와 물 – 양혜규에 관한 글 모음〉, 2001-2020, 엮은이: 김수기, 양혜규, 이지회, 디자인: 정진열, 출판: 국립현대미술관, 현실문화연구, 서울, 2020, 24.5x17x5cm, 616 페이지, 하드커버. ISBN 978-89-6564-258-9.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비디오: 양혜규 스튜디오.

2019년 〈바자 아트〉에서 작가에게 리얼리티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면서 “그것은 사전적 의미의 리얼리티, 즉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느끼는 진실”이라고 설명했다. ‘주관적 진실’이란 작가는 물론 기획자에게도 중요한 개념일 것이다. 두 분이 믿는 단 하나의 ‘주관적 진실’은 무엇인가?
정도련: 거의 9년 동안 홍콩에서 M+라는 기관의 탄생에만 매달렸다. 인생의 황금기를 바친 건데(웃음) 이렇게 놓고 보면 나의 정체성은 ‘기관을 만드는 사람’이다. 여기에도 일종의 주관적인 진실이 존재한다. 양혜규가 동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가 중의 한 명이라고 믿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나의 믿음과 기관의 믿음이 일치하지 않았다면 결코 현재의 소장품을 구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의 믿음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관적 진실이 객관적인 지식과 역사가 되게 만드는 것, 그게 기관에 종사하는 큐레이터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양혜규: 나에게 ‘주관적 진실’은 ‘관련성을 담보한 정확성(relevant precision)’이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미술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될 것 같은데. 비단 나 혼자 꽂혀서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와 상관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정의하는 미술이자 내가 믿는 어떤 주관적 진실이다.   
 
6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위트레흐트 편篇〉, 2006, 다양한 감각 자극 장치, 전선. 가변크기. (※ 이 작품이 비디오 에세이와 더불어 전시될 때는 알루미늄 블라인드를 추가적으로 설치). M+ 소장, 홍콩. 빛 요소: 관계적 무관계성; 구형 스탠드 조명, 스포트라이트 조명, 완동 계전기, 타이머. 습기 요소: 한줌의 어둠; 가습기, 금속선, 타이머. 온도 요소: 소진의 가능한 유사어; 적외선 히터 2대, 타이머. 바람 요소: 익명의 운동; 선풍기, 타이머. 향기 요소: 내면으로 가는 타임머신이 되느라 거의 녹초가 된 향 분사기 2대(모닥불 향, 새로 한 빨래 향). «에스키모 공간과 같이» 전시 전경, 1857, 오슬로, 노르웨이, 2010. 사진: © 1857, Oslo.

6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위트레흐트 편篇〉, 2006, 다양한 감각 자극 장치, 전선. 가변크기. (※ 이 작품이 비디오 에세이와 더불어 전시될 때는 알루미늄 블라인드를 추가적으로 설치). M+ 소장, 홍콩. 빛 요소: 관계적 무관계성; 구형 스탠드 조명, 스포트라이트 조명, 완동 계전기, 타이머. 습기 요소: 한줌의 어둠; 가습기, 금속선, 타이머. 온도 요소: 소진의 가능한 유사어; 적외선 히터 2대, 타이머. 바람 요소: 익명의 운동; 선풍기, 타이머. 향기 요소: 내면으로 가는 타임머신이 되느라 거의 녹초가 된 향 분사기 2대(모닥불 향, 새로 한 빨래 향). «에스키모 공간과 같이» 전시 전경, 1857, 오슬로, 노르웨이, 2010. 사진: © 1857, Oslo.

7 〈의상 동차動車 – 음양〉, 2012, 알루미늄 블라인드, 분체도장 알루미늄 프레임, 분체도장 손잡이, 바퀴, 자석, 털실, 방울, 고무끈, 318x310x310cm, M+ 소장, 홍콩. ≪탱크: 아트 인 액션≫ 전시 전경, 테이트 모던, 런던, 영국, 2012.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7 〈의상 동차動車 – 음양〉, 2012, 알루미늄 블라인드, 분체도장 알루미늄 프레임, 분체도장 손잡이, 바퀴, 자석, 털실, 방울, 고무끈, 318x310x310cm, M+ 소장, 홍콩. ≪탱크: 아트 인 액션≫ 전시 전경, 테이트 모던, 런던, 영국, 2012.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8 〈건축 자재상 콜라주 – 헬벡 풀장 #1〉, 2012, 건축 자재상 카탈로그, 크로모룩스지, 알루디본드에 마운팅, 액자, 51.2x71.2cm, M+ 소장, 홍콩.

8 〈건축 자재상 콜라주 – 헬벡 풀장 #1〉, 2012, 건축 자재상 카탈로그, 크로모룩스지, 알루디본드에 마운팅, 액자, 51.2x71.2cm, M+ 소장, 홍콩.

※ 홍콩의 공공 장소 감염병 예방 수칙에 의거 두 사람은 투명 마스크를 끼고 촬영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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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Dan Leung Courtesy of M+, Hong Kong(인물)
    사진/ Lok Cheng Courtesy of M+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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