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담은 포토에세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봄을 담은 포토에세이

눈뜨는 봄

BAZAAR BY BAZAAR 2023.03.05
“하지만 봄은 심지어 어떤 것조차 아니지, 그것은 말을 하는 방식일 뿐. 꽃들도, 초록색 잎사귀들도 돌아오지 않아. 새로운 꽃, 새로운 초록색 잎사귀들이 있는 거지.” ‐ 페르난두 페소아 ‘봄이 다시 오면’ 中.
 
 
창경궁 온실의 꽃봉오리
살얼음이 낀 호수 춘당지를 가로질러 오솔길 끝에 다다르면 예스러운 미학의 건축물이 보인다. 1909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창경궁 온실은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온실이었다. 현재는 국가등록문화재로 남아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숨에 계절이 바뀌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남향으로 난 유리 천장으로 환한 빛이 쏟아지고 통영 비진도의 팔손이나무, 전남 부안의 꽝꽝나무 같은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70여 종의 식물들이 생기를 품은 채 숨 쉬고 있다. 잎을 틔우는 영춘화, 진달래 옆에서 봄을 가장 부지런히 맞이하는 식물은 단연 동백. 탐스럽고 짙은 선홍빛 꽃, 여리한 분홍 빛깔의 애기동백까지 겨울부터 만개한 꽃망울이 은은한 향을 퍼트린다. 아무리 꽃샘추위로 바깥은 칼바람이 불어도, 온실 안은 포근하고 촉촉한 온기가 감돈다.
 
 
꿀벌의 비행
유난히 춥지 않았던 재작년 겨울을 보낸 지난봄, 당신은 꿀벌이 집단적으로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한겨울의 이상기후 때문에 봄이 온 줄 착각한 벌들이 벌통 밖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탓이 크다. 올겨울을 난 꿀벌들은 어떨까? 도시화로 서식지를 잃은 벌들을 위해, 서울 곳곳의 옥상에 벌통을 두고 도시 양봉을 전하는 어반비즈의 상도동 양봉장을 찾았다. 겨우내 벌들은 남극의 펭귄처럼 올망졸망 모인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힘을 비축하며 추위를 버티는 거다. 한번 벌통을 벗어난 벌은 힘이 약해지고, 무리가 작아진 벌들은 겨울을 견딜 힘을 잃는다. 다행히 올해 벌들은 제법 튼튼하다. 길가에 벚꽃과 들꽃이 피고 부드러운 공기의 감촉이 느껴질 때, 벌들은 다시 분주해질 것이다. 깊은 산속, 드넓은 들녘이 아니라도 벌의 날갯짓을 느낄 수 있다.
 
 
셰프의 농장
“봄이란 눈 녹은 진흙탕물에 발이 빠져도 휘파람을 불고 싶은 때”라던 어느 작가의 말이 가장 어울리는 곳은 한낮의 농장이 아닐까? 질척한 흙을 밟으며 농장을 걸었다. 남양주 준혁이네 농장은 셰프들의 공유 농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밍글스의 강민구, 주옥의 신창호 셰프를 포함한 파인 다이닝 셰프들과 바텐더, 파티시에까지. 이장욱 농부가 자연 농법으로 키운 허브와 식용꽃으로 미각 실험을 하기 위한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주렁주렁 동전처럼 잎이 달린 워터코인, 산뜻한 신맛이 입맛을 돋우는 소렐, 금오초와 유채꽃. 1백여 가지 종류의 농작물들이 한 평 남짓한 터를 잡고 싱그러운 얼굴을 내민다. “농장에서는 계절을 재단하듯 나누지 않아요. 천천히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죠. 지금 죽어 있는 것들이 곧 살아나기도 하고. 발자국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매일 자라요.” 농부의 말 속에 계절이 순환하는, 단순한 법칙이 들어있다.
 
 
강아지들의 첫 산책
몇 달 전, 캠페인 사이트를 통해 한 허가 번식장에서 80여 마리의 개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프랑스는 2024년부터 반려동물 판매금지법이 시행된다는데, 2023년 대한민국의 동물보호법은 번식장을 허가한다. 그곳에서 태어난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는 펫숍으로 이동된다. 번식장에서 평생을 보낸 보더 콜리 톨리, 그리고 톨리가 지난겨울 좁은 뜬장에서 낳은 여섯 형제는 파주에 자리한 동물복지센터 카라 더봄센터에 입주했다. 활동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개 2백여 마리, 고양이 40여 마리가 새 가족을 기다린다. 은색 털이 빛나는 니니, 늠름한 모습의 스탱과 퀸즈가 태어나 처음으로 흙냄새를 맡으며, 중앙 정원을 산책하는 날. 꼬리가 도무지 멈출 줄도 모르고, 명랑하다. 햇살 아래 그들만의 레이스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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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안서경
    사진/ 표기식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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