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트 모스(Kate Moss), 사진작가 데이비드 심스(David Sims), 미국 〈하퍼스 바자〉 1997년 7월호.
90년대를 살아온 X세대로서 필자는 혼란스럽기도 하다. 나의 화려했던 과거 스타일이 언제부터 ‘빈티지’로 취급받게 된 걸까? 푸들 스커트, 히피 프린지, 메탈릭한 아이섀도 모두 옛것이 되었다. 90년대 우린 실재했고 자유로웠으며 다소 과했던 80년대 스타일에서 벗어난 모더니스트였다. 단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취급받기엔 참으로 멋졌다. 트렌드를 좇는 에디터이자 모교 고등학교 치어리더 팀을 설득해 레드에서 너트 브라운으로 립스틱 컬러를 바꾼 당사자로서 이러한 흐름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90년대 뷰티 노스탤지어는 나의 영혼의 양식이다.
하지만 다른 레트로 붐과 마찬가지로 구닥다리처럼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모습으로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90년대 트렌드를 모던하게 풀이하는 방법은? 당시 상징적인 순간들을 기록했던 아티스트에게 고견을 물었다.





THE SKIN
“케이트 모스가 캘빈 클라인 쇼에 두 번째로 등장한 시즌이었어요. 그녀의 모습은 당시 뷰티 업계로부터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죠. 보통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면 마스카라조차 하지 않은 모델을 런웨이에 내보내진 않았겠죠.” 페이지는 회상한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모델들은 눈꺼풀과 뺨, 코에 바셀린만 조금 바른 채 무대에 섰다. “무심한 듯 신경 쓰지 않은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어요.” 그가 말한다.
그러나 맨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당시 메이크업 브랜드에 본인의 이름을 내걸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 바비 브라운의 제안에 귀 기울여보자. 그녀는 현재 친환경 뷰티 브랜드 존스 로드(Jones Road)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피부톤에 꼭 맞는 파운데이션을 사용하면 전혀 바르지 않은 듯한 느낌을 낼 수 있어요.” 그녀는 여기에 브론저를 가볍게 바르면 피부톤을 따뜻하게 만들어 2023년 버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덧붙인다. “운동선수같이 탄력 있고 건강해 보이던 당시 신디 크로퍼드의 룩을 재현할 수 있어요. 물론 지금도 그녀는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죠.”
THE BROW
2023년 런웨이에서도 얇고 희미한 눈썹이 재현되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에서 모델들은 매우 가늘게 그린 눈썹을 선보였고, 빅토리아 베컴과 로베르토 카발리, 마크 제이콥스 쇼에서는 눈썹을 하얗게 탈색했다. 그러나 수랏은 눈썹을 과도하게 제거하는 것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실패를 맛본 뼈아픈 경험이 있다. 마돈나가 ‘베드타임 스토리스(Bedtime Stories)’로 활동할 당시, 나는 그녀의 눈썹을 따라 하기 위해 눈썹을 몽땅 뽑아버렸다. 당시에 난 내 모습이 굉장히 시크해 보인다고 만족했지만 문제는 눈썹이 다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알렉사 데미, 벨라 하디드, 조디 터너 스미스의 얇은 아치형 눈썹을 모방하고 싶다면 신중해야 한다. 컨실러를 사용해 눈썹이 얇게 보이도록 연출하거나 파우더를 바르기보단 얇은 펜슬을 이용하는 것이 정돈되고 세련된 모습을 완성할 수 있다. 수랏은 눈썹을 다듬는 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보수적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 번 실패하면 되돌리기가 어려우니까요.”

1 Mac 아이섀도우, 에스프레소 3만3천원. 2 Chanel 루쥬 알뤼르 벨벳, 미스테리유즈 5만5천원. 3 Dior 루즈 디올, 베이지 꾸뛰르 5만5천원대. 4 볼드한 아이라인으로 눈매를 강조한 2023 디올 스프링 컬렉션. 5 피부를 맑고 촉촉하게 표현한 2023 알투자라 스프링 컬렉션.
THE EYES
“흑인 모델에게 볼드한 컬러를 쓰지 않은 건 파격적인 행보였어요. 누드 메이크업은 물론 눈 주변을 브라운 톤으로 연출한 시도는 거의 최초라 할 수 있죠.” 당시 캠벨의 획기적인 룩을 탄생시킨 셀리브리티 메이크업 아티스트 샘 파인(Sam Fine)은 전한다.
페이지 또한 덜어낼수록 더 놀라운 결과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과한 톤을 입지 않은 얼굴에는 순수하고 매력적인 무언가가 드러나요. 핼무트 랭의 초기 쇼에서 저는 어두운 퍼플과 브라운, 그레이 컬러로 눈가를 연하게 스머징했죠.”
또 이 시기엔 무겁게 그린 아이라인으로 세련된 미니멀리즘을 표현했다. 최근 디올과 모스키노 쇼에서 선보인 룩은 1995년 당시 큰 인상을 남겼던 구찌 가을 컬렉션의 그런지 아이 메이크업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당시 우리는 블랙 라이너를 사용한 후 엘리자베스 아덴 ‘에잇 아워 크림’을 그 주변에 발랐어요. 그리고 모델에게 눈을 가늘게 뜨라고 요청한 다음 번지도록 손으로 문질렀죠.” 수랏이 전한다.
요즘 틱톡의 인플루언서들은 당시 기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얼굴에 물을 뿌려 메이크업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보다 깔끔한 결과를 원한다면? 초콜릿 컬러의 섀도 파우더로 아이라인을 그린 후 작고 단단한 브러시로 번지도록 연출해보자.
THE LIPS
“1980년대에 핑크나 마젠타, 라일락처럼 네온이나 쿨 톤이 주류를 이뤘다면 90년대에는 브라운과 러스트, 베이지 톤으로 완전히 결을 달리했어요.” 수랏은 각자가 좋아하는 핑크나 베리 컬러를 바른 후 크리미한 베이지 립스틱을 더해 선명한 컬러를 중화해보라고 제안한다.

1 Lawless 쉐이프 업 소프트 필 브로우 펜슬 2만7천원대. 2 래디시 브라운 컬러로 립 메이크업을 연출한 2023 샤넬 스프링 컬렉션. 3 Jones Road 왓 더 파운데이션 5만7천원대.
THE HAIR
“1991년, 크리스티 털링턴은 한 번도 염색한 적 없는 모발 상태였어요. 저는 연한 블론드 컬러를 사용해 머리 상단과 양 옆을 염색했고, 그 후로 모든 사람들이 그녀처럼 밝게 염색하고 싶어 했죠.” 존스는 당시를 추억한다. 그리고 마침내 10년간 사랑받아온 애시 컬러를 제치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멀티 레이어드 커트, 일명 레이철 커트를 빼놓고는 90년대 헤어스타일을 논할 수 없다. 헤어 스타일리스트 크리스 맥밀런(Chris McMillan)의 아이코닉한 섀기 커트는 〈프렌즈〉를 통해 유행을 선도했다. 레이철 커트의 2023년 버전은 덜 다듬어진 스타일로, 틱톡에서 ‘울프 커트’로 불리고 있다. 제나 오르테가와 마일리 사이러스 같은 셀러브리티 역시 이 헤어스타일에 도전했다. 이러한 유행이 시작된 데에는 젊은 세대들이 〈프렌즈〉를 즐겨 보게 된 이유도 일부 있지만 손으로 부스스하게 관리하기 쉬운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다. “레이철이 로브 커트(lob, a long bob)를 우리 시대로 다시 가져왔어요.” 90년대 셀러브리티 베로니카 웹에게 레이어드 룩을 시도했던 헤어 룰스(Hair Rules)의 창립자 디키(Dickey)가 말한다. “로브 커트는 이제 대세가 되었죠.”
하지만 난 이 모든 흐름에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나야 그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끌리는 건 당연하지만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들은 어떠한 매력으로 90년대에 매료된 걸까? 올해로 열네 살이 된 나의 딸 리나는 90년대를 향한 관심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과거에서 낭만을 느껴요. 당시의 모든 것은 쿨해 보이거든요. 더 리얼해 보이기도 하고요.”
페이지 또한 이에 공감한다. “90년대에는 클럽에 가는 날이면 집을 나서기 전에 본 거울 속 얼굴이 그날 본 마지막 모습이곤 했죠. 그때도 누군가는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지만 지금처럼 자신을 실시간으로 보지는 않았어요. 소셜미디어가 판치는 요즘은 매일을 다큐멘터리처럼 찍고 공유해요. 이런 삶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느껴요. 매일 밤을 특별하게 치부한다면 그 어느 날도 특별하지 않을 테니까. 90년대에는 뭐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자유가 존재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