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증후군(Paris Syndrome)’이란 말이 있다. 샹젤리제 거리, 에펠탑, 센강 등 파리에 관한 환상을 가득 품은 이들이 현실로 마주하게 된 파리의 모습에서 괴리를 느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일컫는다. 실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피해망상이나 환각,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파리에서의 로맨스까진 아니더라도 낭만적인 도시에서의 하루를 꿈꾸던 여행자들의 망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현실에 실망한 이들은 극심한 우울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 3월, 파리를 찾은 사람들은 더욱 심한 파리증후군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시내 한복판인 샹젤리제 거리를 비롯해 몽테뉴 거리, 에펠탑 주변 할 것 없이 곳곳이 쓰레기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고 연금을 받는 시기도 뒤로 미루는 것이 골자인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의 일환. 이에 동참한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단행해 벌어진 풍경이다. 쓰레기 소각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수거하지 못한 쓰레기가 1만 톤이 넘게 쌓였다. 도시의 절반가량이 쓰레기 수거업체 노조의 파업에 영향을 받아 거리 곳곳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야외 카페와 식당 주변에서도 악취가 나고 쥐가 출몰했음은 물론이다. 프랑스 ‘유럽1’ 라디오의 한 진행자는 파리의 거대한 쓰레기 산을 언급하며 “파리의 6백만 마리 쥐들을 위한 무한리필 뷔페”라고 말했다. 3월 6일부터 시작된 청소 노동자들의 시위는 3주 이상 계속되다 3월 28일 막을 내렸다.
파업과 시위에 익숙한 프랑스이지만 이번 사건이 유독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 건 시민들의 삶과 직결되어서일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쓰레기 시설의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일들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연금 개혁’이라는 전 세계 공통적인 관심사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AFP 통신은 이번 파업 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건 파리의 쓰레기 수거업체 노조라고 언급했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를 떠나 예상치 못한 계기로 우리는 그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쓰레기 산이라는 표현이 비유나 과장이 아닐 정도로 사람 키보다 높은 쓰레기 더미가 거리 곳곳을 뒤덮은 이번 사태를 보며 인류가 편리해질수록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쓰레기 배출량에 대한 책임을 더욱 무겁게 느끼게 된다. 전 세계 미술관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습적으로 명화에 테러를 가하던 기후 활동가들이 쓰레기 수거 방해 공작을 펼쳤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 파리의 쓰레기 산을 지켜본 사람들의 시선은 예전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 많은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파리의 쓰레기 산을 목도하며 그동안 해보지 않은 질문도 떠올린다. 쓰레기를 줄이자, 재사용하자, 잘 버리자는 구호에는 익숙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내가 버린 쓰레기가 최대한 재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헷갈리는 분리 배출법도 알려주는 ‘쓰레기 백과사전(blisgo.com)’까지 뒤져 꼼꼼히 버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만하면 쓰레기를 버리는 데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해보지만 자기 위로일뿐…. 아무리 세심하게 분리 배출했다 하더라도 그 쓰레기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막연히 일반 쓰레기로 버린 것들은 태워지거나 땅에 묻힐 것이고 열심히 분리수거한 재활용 쓰레기는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태어나 어딘가에서 다시 쓰이고 있을 것만 같다.(물론 그 과정에서도 폐수 문제와 대기오염 문제 등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어쩌면 그냥 그렇게 잘 해결되었으리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쓰레기를 안 만들어낼 수 없는 요즘 같은 사회에선 그게 최선이라 믿고 ‘잘 버리기’만 하면 많은 것이 좋아질 거라고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뒤지다 세계 여행 중 목격하게 된 쓰레기를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저자가 쓴 책 〈쓰레기책〉을 발견하게 됐다. 이 책에는 2년간 61개국 1백57개의 도시를 누비며 직접 보고 깨달은 쓰레기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는 쓰레기가 먹이인 줄 알고 먹는 동물들, 쓰레기 더미 위에서 비닐봉지나 플라스틱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쓰레기를 팔아 먹고 사는 사람들 등을 보게 된다. 결국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은 그런 식으로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이 차곡차곡 몸속에 쌓이고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어 다시 인간의 터전을 공격한다. “쓰레기는 돌아오는 거야”가 이 책의 결론이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피할 방법은 없다. 지난해 6월에는 지구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라 여겨지는 남극에 플라스틱 눈이 내렸다. 뉴질랜드 캔터베리대학교(University of Canterbury) 연구진이 남극 대륙 로스 빙붕 19곳에서 채취한 모든 눈 샘플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 것이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의 조사에 따르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 바다에서는 대왕고래가 하루에 1천만 개의 미세플라스틱을 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주요 먹이인 크릴새우를 섭취하는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몸에 쌓였다고. 먹이사슬로 연결된 우리 인간이 미세플라스틱의 영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이 말이 더 유효할 것 같다. “내가 버린 것이 곧 나를 만든다.”
파리에 있는 전체 20개 구 중 지방자치단체가 쓰레기 수거를 담당하는 10개 구에서 수거를 하지 않았다. 난 가장 지저분한 동네라는 파리 18구에 살고 있는데 이곳은 파업을 하지 않아 가장 깨끗했다.(웃음) 파리 시내를 걷다 보면 키 높이까지 쌓인 쓰레기가 거리마다 있었다. 쥐들은 원래 쓰레기통 뒤에 숨어 있는데 쥐도 많이 보였다. 악취가 심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를 풍자한 ‘에밀리 인 푸벨(Emily in Poubelle)’ 밈도 유행했다. 푸벨(poubelle)은 프랑스어로 쓰레기통을 뜻한다.(틱톡에 ‘Emily in Poubelle’을 검색하면 드레스업한 채로 쓰레기통을 끌고 가거나 쓰레기 더미 앞을 지나는 패러디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쓰레기 더미 때문에 불쾌하다”는 반응과 “파업할 권리를 존중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갈린다고 들었다.
평소에도 파업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러려니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심각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프랑스 사람들이 격렬한 시위를 하는 편이다 보니 길 곳곳에 널린 쓰레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파리는 더럽고 친절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파리에 대한 환상과 현실 간의 괴리가 커 이곳으로 여행온 사람들이 실망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파리 곳곳에는 테라스 자리가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도 많다.
별로 개의치 않는다. 쓰레기가 불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냥 앉아 있더라.
쓰레기가 늘어나는 속도가 어느 정도 체감되던가?
처음에는 쓰레기 수거를 안 했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산처럼 쌓였다. 정부 차원에서 사립 청소부들을 보내려 했지만 시위를 하고 있는 공립 청소부들이 드러누워 트럭이 나오지 못하게끔 몸으로 막았다. 가장 심했을 때는 사람들이 쌓인 쓰레기를 불태웠을 때다. 너무 위험하니 2~3일 후 민간 청소 업체를 고용해 쓰레기를 치우더라. 이번에는 쓰레기만 태웠으니 망정이지 지난번 노란 조끼 시위 때는 차를 불태워서 길거리의 차 10대가 다 폭발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도 분리수거를 하지만 한국처럼 잘 하진 않는다. 일반 쓰레기와 유리병은 분리하지만 나머지는 다 같이 넣어버린다. 2~3주 동안 길거리가 초토화되는 것을 보고 ‘인간이 이렇게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내는구나’ 새삼 놀랍긴 했다. 여기가 어디인가 싶었다.
파리의 쓰레기보다 더 심한 문제도 있다.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 서부의 생트 솔린에서는 대형 저수지 건설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시위가 열리고 있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저수지가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은 로컬 농업을 돕는 것이 아닌 동물들의 사료를 만드는 대규모 농장을 위해 불법으로 지하수를 파 사유하려는 것이다. 푸아티에(Poitier) 법원에서도 2021년에 저수지 공사를 중지하라는 판결이 났지만 회사의 로비로 인해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있다.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해 군인과 시위대 등 중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마치 〈매드맥스〉의 한 장면 같다. 요즘 프랑스는 비도 오지 않아 무척 가물다. UN에서도 앞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담수가 전 세계적으로 부족할 거라고 했다. 기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산맥에 눈이 오지 않아 강물이 안 내려오고 호수도 말라 농사를 짓기도 어렵다. 지인이 지난 크리스마스 때 스키 스테이션으로 유명한 메제브에 갔는데, 한겨울에 눈이 아닌 비가 오는 건 처음 봤다고 하더라. ‐ 이승연(파리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