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를 이야기할 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공예를 이야기할 때

28년간 금속공예가의 길을 걸어온 심현석의 목소리

BAZAAR BY BAZAAR 2023.05.09
 
 곡선과 우아함, 자연스러움. 이 세 단어로 축약되는 르베이지의 이미지를 담은 브로치와 귀고리

곡선과 우아함, 자연스러움. 이 세 단어로 축약되는 르베이지의 이미지를 담은 브로치와 귀고리

 
요즘 세상에 ‘공예가’라는 직업이 던지는 메시지는 남다르다. 공예라는 기술을 설명하기 위해선 평소 잘 쓰이지 않는 단어가 대동된다. 예컨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숙련 노동의 산물’ 같은 문장처럼 말이다. 공예는 노동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손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의 가치를 높이 산다. 공예는 인간만이 지닌 삶에 대한 우아한 태도다. 한동안 우린 그걸 잊고 살았다. 한국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르베이지가 금속공예가 심현석과 ‘아틀리에 드 르베이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찍이 공예의 매력을 알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심현석은 흔들림 없이 한길을 걸었다. 현대 공예가로는 흔치 않게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디자인 감각과 손기술을 훈련했다. 은으로 만든 수공 카메라로 주목을 받았고, 기능을 중심에 둔 단정한 형태의 생활용품, 기하학적 형태의 장신구를 만들고 있다. 우아함의 가치를 아는 브랜드 르베이지와 한국 공예의 만남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28년간 오롯이 금속공예가의 길을 걸어온 심현석 작가와 르베이지의 협업으로 탄생한 하트 모양의 브로치.

28년간 오롯이 금속공예가의 길을 걸어온 심현석 작가와 르베이지의 협업으로 탄생한 하트 모양의 브로치.

 
28년간 금속공예가로 살고 있다. 수많은 재료 중 금속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금속이란 변화의 폭이 굉장히 넓은 재료다. 과거에 나는 조금은 덜렁거리는 성격이었다. 전공 과정에서 도예도 배우고 목공도 다루었지만, 그것들에 비해 금속은 실수를 하더라도 과거로 돌이키기 쉬운 재료라 한결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금속이라는 물성이 나에게 잘 맞는다고 느꼈다.
심현석의 대표 작품으로 수공 카메라를 꼽는다. 카메라를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작은 나사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니 보통의 카메라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사실 과거에는 모든 걸 손으로 만들었다. 요즘은 그 사실을 그저 잊었을 뿐. 나도 처음에는 단순한 형태의 핀홀 카메라를 만들었다. 그걸로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본 순간 신비로웠다. 점점 더 잘 찍히는 카메라를 만들고 싶었다. 10년 동안 계속 발전시켜 이후에는 렌즈도 달고, 초점도 맞출 수 있는 조리개 카메라도 만들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 이상이 되었을 때(물론 판매도 했다) 그만해도 되겠다 싶어서 카메라 만들기를 멈췄다.  
자신의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니 참 매력적이다. 보통 사람은 한 의자에 앉아서 하나의 일만 하다 생을 마감하는데, 이 작업실에 있는 수많은 의자에 앉아 하나의 물건이 탄생하는 전 과정을 스스로 한다. 이곳에서 어떤 물건까지 만들어보았나?
진짜 다양하다. 현관 손잡이부터 커피 도구, 커트러리, 새 모이집, 농기구, 바늘, 단추…. 아, 금속이 아닌 것으로도 만든다. 옷이나 가방, 테이블웨어도 직접 만들었고, 얼마 전 하수구 트랩이 고장났을 땐 그것도 직접 만들었다.
그런 수작업 시 기쁨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전에 옷을 만들려고 재봉질을 배운 적이 있다. 그때 구멍 난 옷으로 걸레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걸레가 생기고 나니 그렇게 싫어하던 걸레질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보통 물건을 사서 쓰면 결과만 보게 되는데, 직접 만들어 쓰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쓰는 행위까지 모든 것에 애정이 생기게 된다. 펜을 직접 만들어보니 글을 쓰는 것이 좋아졌고, 커피 도구를 만드니 커피를 마시는 것뿐 아니라 커피를 준비하는 과정까지 좋아졌다. 이건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서 써봐야 느끼는 감정이라 공감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 같은 공예가들이 이 감정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매력을 풍기는 아틀리에 드 르베이지의 육면체 귀고리.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매력을 풍기는 아틀리에 드 르베이지의 육면체 귀고리.활용도가 높은 긴 박스 형태의 아틀리에 드 르베이지 브로치. 입체적인 하트 모양을 연상시키는 아틀리에 드 르베이지 브로치.
 
르베이지가 이번 해부터 새로이 진행하는 ‘아틀리에 드 르베이지’의 첫 협업 작가로 함께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시각장애 아동의 개안 수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 선한 영향력이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데 재료나 도구로서 쓰이고 싶었다. 공예 작가로 살아가다 보니 나 역시 보는 즐거움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움을 보는 삶을 알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도 크다.
르베이지의 이미지는 어떠했나?
곡선, 자연스러움, 우아함. 이 세 단어가 떠올랐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브로치 2점과 귀고리를 만들었다. 브로치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사실 금속공예가에게 브로치란, 도예가가 그릇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일이다. 금속공예가라면 으레 브로치를 만든다. 그래서인지 브로치만이 가진 독특한 언어가 좋다. 브로치라는 것이 귀고리나 반지 같은 장신구와는 다르게 착용자와 브로치 사이에 옷이라는 완충제가 존재한다. 옷이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좀 더 편안해지고,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더 마음껏 끄집어낼 수 있게 해준다. 나만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브로치의 디자인 속에 집어 넣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평소에도 좋아하는 작업이다.
이번 작품들 속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나?
우선 평소 장신구를 만들 때 기본으로 시작하는 구조가 육면체, 즉 상자 모양이다. 르베이지의 우아한 선을 브로치로 표현하고 싶었고, 긴 형태의 브로치가 활용도가 높다고 생각해 길쭉한 상자 모양의 브로치가 탄생됐다. 두 번째 하트 모양은 내가 평소 즐겨 작업하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조합해 이 프로젝트의 아이콘과도 같은 심장, 즉 하트 형태를 만들고 싶었다. 아틀리에 드 르베이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이 일종의 배지처럼 이 브로치를 착용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었다. 귀고리 역시 육면체를 펼친 모양을 응용해 시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뾰족한 사각 형태였는데 안전상의 문제로 둥글게 마무리하게 됐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완성하고 나니 클로버 또는 하트를 풀어 놓은 형태가 됐다. 이 역시 이번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가평의 시골 마을에 자리한 심현석 작가의 아틀리에. 그의 안온한 삶이 작품 속에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평의 시골 마을에 자리한 심현석 작가의 아틀리에. 그의 안온한 삶이 작품 속에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전업공예 작가로서의 일상이 궁금하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8시간 근무를 하고, 일을 절대 집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다. 보통 아티스트들은 몰아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직장인의 마인드로 일한다.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게 규칙적으로 자기 관리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 지키려고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나태해지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다. 서울에 작업실이 있을 때는 새벽 5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했다. 지금도 새벽 6시면 작업실에 나온다. 마치 농부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해온 것이 28년간 한 일을 해올 수 있던 힘인 것 같다.
5년 전, 가평의 시골마을로 작업실과 집을 옮겼다. 일이 끝나고 난 후, 시골생활이 궁금하다.
작업을 끝내고 나면, 마을의 고양이와 개들을 산책시키고, 새들이 쉬어 갈 수 있게 마당에 연못을 만들고, 또 농사를 짓는다. 아주 크게는 아니지만 내가 먹고,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 정도로 한다. 공예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골에서 작업도 하고, 농사도 지으며 자급자족을 하는 삶을 꿈꿨는데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그 꿈을 이뤘다.
자급자족이란 단어도 참 낯설다.
인간은 원래 자급자족할 수 있는 존재다. 이 역시 우리가 잊고 지냈을 뿐.
 
※ 르베이지는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널리 나누고자 2009년 론칭 시기부터 ‘하트 포 아이(Heart for Eye)’ 캠페인을 펼쳐왔다. 올해부터는 같은 맥락의 ‘아틀리에 드 르베이지(Atelier de LEBEIGE)’ 캠페인을 새로이 시작한다. 한국의 미감을 시대의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장인과 공예작가를 조명해 함께 협업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며, 그 판매 수익금은 시각장애 아동의 개안 수술을 위해 삼성서울병원에 기부된다.   
 
김민정은 프리랜스 에디터다. 예술을 입고, 먹고, 예술과 함께 살기를 바라는 생활밀접형 예술 애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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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김민정
    사진/ 김선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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